연준, 중남미 자금 세탁 개입 의혹 모건스탠리 조사
“북한, 중국 통해 가상자산 현금화”
러, 다이아몬드·원유 등 원자재 원산지 세탁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해 이념 분쟁과 전쟁 등이 확산하면서 글로벌 자유무역주의가 붕괴했다. 원산지에 따라 수출과 수입 여부가 결정되는 ‘진영 논리’가 뚜렷해진 것.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를 무역장벽이 가로막자 원산지를 지워내는 이른바 ‘세탁 전쟁’이 본격화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14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67개 언론 파트너들과 조사한 결과 지중해 섬나라인 키프로스가 최근 러시아의 ‘돈세탁 허브’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ICIJ는 “키프로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기타 잔혹한 독재자들에게 더러운 돈을 전달하는 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키프로스 주요 은행들은 ‘황금비자’ 프로그램을 통해 2869명 러시아 국민에게 유럽연합(EU)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을 도왔다. 심지어 이를 위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은행들은 약 70억 달러(약 9조 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해외 부호들의 자금세탁을 도왔다는 혐의로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를 조사 중이다. 연준은 모건스탠리의 부실한 고객 실사와 자금세탁 방지 노력 등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자금 세탁에 은행이 개입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자산관리 사업은 전체 매출의 50%에 육박할 만큼 핵심적이다. 지난해 기준 자산관리 규모만 무려 5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은 모건스탠리가 베네수엘라 고위 관리들의 자금세탁을 도운 혐의도 살펴보고 있다. 미국은 2020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자금은 물론 가상자산마저 세탁 대상이 되고 있다. 앞서 7일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유엔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해킹을 통해 확보한 가상자산 수백만 달러를 중국에서 세탁했다”고 전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를 받는 북한이 대규모 가상자산을 현금화하기 어려운 만큼, 세탁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현금화하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원자재와 부자재 역시 다른 상품과 뒤섞이면서 원산지 세탁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무역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는 조만간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수입 금지 조처를 포함한 12차 대러 제재 방안을 내놓는다. 다이아몬드 판매 수입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이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연간 다이아몬드 수출로 4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아몬드의 경우 사실상 원산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유통과정과 금액 등을 파악하기 어려워 가장 손쉬운 자금 세탁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분 1억1996만 캐럿 가운데 러시아산은 4190만 캐럿(34.9%)에 달한다.
사정은 원유도 마찬가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내려진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는 또 다른 유통 경로를 만들고 있다. 여러 국가를 거치면서 러시아산 원유를 다른 국가의 원유와 뒤섞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런 세탁 행위는 러시아같이 제재를 받는 국가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이후 무역이 활발했던 당시에는 파는 곳(국가)이 많았으니 원자재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이를 활용한 가공무역도 활발했다”면서 “최근 수입선 다변화 전략이 중단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이는 곧 제품 가격으로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국가가 조금이라도 싼 자원을 찾고자 하는 무역 전략 중 하나로 원산지를 희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