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정책변화가 없으면 50여 년 후 정부(공공부문) 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00% 수준에 달할 것이란 적색 경고가 나왔다. 경고 출처는 어제 공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다. ‘GDP 2배’는 정부가 연금 적자를 메운다고 가정할 때의 결과라고 한다.
적색 경고를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할 계제가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1년 넘게 연금 개혁 방향을 놓고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최근 연금 보험료율을 현행보다 4~6%포인트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40~50%로 조정하는 개혁안을 제시했다. 정부 검토과정에서 나왔던 24개 안이나 ‘맹탕’ 안보다는 진일보한 제안이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현행 보험료율은 26년째 그대로다. 역대 정부와 국회가 국민 눈치만 보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끈 탓이다. 앞으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연금 곳간은 2041년부터 적자로 전환된다. 곳간이 텅 비는 것은 2055년쯤이다. 공무원연금은 이미 벌써 오래전에 그런 길로 갔다. 국민연금은 다를 것이라고 낙관할 이유가 없다.
가장 급한 것은 현행 보험료율 9%를 인상하는 일이다. ‘더 내는 개혁’에 힘을 모아야 한다. 민간자문위의 2가지 안이 미래의 보험료율을 13% 혹은 15%로 상정한 것은 그런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번 개혁안은 연금 곳간의 고갈 시점을 고작 7~16년 늦출 뿐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금 파탄을 막는 근본 해결책과는 거리가 있다. 경각심을 가질 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IMF가 예상한 연금 디스토피아가 고스란히 현실화할 수도 있다.
IMF는 우리나라 실질 GDP 증가율이 올해 1.4%에서 내년 2.2%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2020년대 후반까지 계속 2% 안팎 증가율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국가적으로 큰 숙제를 안은 나라로 간주한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가 경제성장의 주요 제약요인이다. 연금을 비롯한 광범위한 구조개혁은 이 때문에라도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IMF가 대한민국 급소로 짚은 것은 연금만이 아니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같은 노동개혁 과제도 발등의 불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지난해 기준 43.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거야(巨野)는 가뜩이나 노조 세력에 과도한 힘이 쏠려 문제가 커지는데도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는 등 입법폭주를 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표를 가진 세력의 눈치만 보니 국가적 재앙의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시장경제 철칙이 무너진 전기요금 등 에너지 가격 결정 구조의 합리화도 급하다. 포퓰리즘의 망령이 연금, 노동만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대계까지 엉망으로 휘젓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치권도, 여론주도층도, 국민도 정신을 차리는 기색이 없다. IMF가 짚은 급소는 그래서 더 아프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