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시장이나 은행에서 제 곳간인양 돈을 빼다 쓴 기업들을 보면 희곡의 주인곡인 포샤 없는 안토니오를 연상케 한다. 상당수 기업은 ‘부채의 역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지난해 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좀비기업 비중은 2009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다. 기업들의 부채비율과 빚 의존도 역시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경기 침체의 골이 여전히 깊은 가운데 미국발 고금리 기조도 장기화하고 있어 살얼음판을 걷는 기업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를 동시에 겪으면서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도 나빠졌고, 업종 및 기업 간 양극화도 심해졌다. 매출액증가율은 15.1%로 전년(17.0%)보다 1.9% 포인트 줄었다. 영업이익률(4.5%)과 세전 순이익률(4.6%)은 전년(5.6%, 6.5%)보다 각각 1.1% 포인트, 1.9% 포인트 떨어졌다.
작년의 얘기만은 아니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 부진한 올해 들어 기업들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올해 3분기 유가증권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94조6982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7.98% 줄어들었다. 남은 4분기 실적 전망치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앞날도 캄캄하다. 시장금리는 갈수록 치솟고 있고, 고환율과 고유가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미국의 ‘나 홀로 성장’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은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 현실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수출 중소기업 542개사를 대상으로 벌인 ‘3분기 무역업계 금융 애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분기 수출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은 자금 사정이 악화했다.
빚을 갚지 못하는 기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43%를 기록했다. 2020년 2월(0.43%) 이후 최고치다. 특히 기업대출 연체율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0.47%로 1년 전보다 0.20% 올랐다.
기업들이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삼중고를 버텨낼 수 있는 해법을 서둘러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저금리 시대에 기업들이 빌려다 쓴 부채가 기업 체질이 허약해진 틈을 타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면 실물경기와 금융 시스템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들을 솎아내는 작업이 그 선행조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