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관의 정계 진출설은 17일 대구 방문 이후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 장관은 오랜 시간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가 하면, 대구를 띄우는 ‘정치인’ 같은 행보를 보이기도 했는데요. 한 장관 본인은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는 해석에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올해 상반기까지의 이야기인데요. 대구 방문 당시엔 “총선은 국민 삶에 중요한 것인 건 분명하다”면서 “(여권에서는) 의견이 많을 수 있다”고 말했고,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서는 “저는 저의 중요한 일이 많이 있다.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또 21일 대전에서는 출마설과 관련해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제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죠. 특히 한 장관의 문법이 여의도 문법과 다르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여의도에서 300명만 공유하는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나는 나머지 5000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말했는데요. 이 발언을 두고 사실상 총선 출사표를 던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한 장관의 발언을 예의 주시하는 곳은 정치권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주식시장이죠. 한 장관의 출마설이 꾸준히 거론되고, 정치권에서도 기정사실화 되면서 이른바 ‘한동훈 테마주’가 뜨고 있는 겁니다.
한 장관의 테마주로 거론되는 종목은 대표적으로 디티앤씨, 디티앤씨알오, 핑거, 체시스, 한국수출포장, 태평양물산, 부방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학연·지연 등 ‘연결고리’를 이유로 한 장관 테마주에 묶인 종목들입니다.
먼저 디티앤씨는 이성규 사외이사가 한 장관과 서울대 법대,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동문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20일엔 전 거래일보다 1150원(29.87%) 올라 상한가인 5000원에 장을 마감했고, 오늘(21일)도 30% 오른 6500원에 거래되면서 상한가를 찍었죠.
디티앤씨알오와 부방은 20일 각각 14.55%, 27.03% 급등했는데요. 두 종목 모두 장 중 한때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디티앤씨알오의 이성규 사외이사는 한 장관과 같은 1973년생으로, 서울대 법대 동문입니다. 부방은 지난해 6월까지 사외이사로 재직한 조상준 씨가 서울대 법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해 관련주로 묶였죠. 부방은 21일에도 전 거래일 대비 10.97% 오른 4250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핑거도 20일 9.21%가 올랐는데요. 사외이사인 김철수 변호사가 한 장관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라는 점에 시선이 쏠렸습니다. 김 변호사는 한 장관의 배우자인 진은정 변호사가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죠. 이에 진 변호사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15일에도 핑거 주가는 들썩였습니다. 당시 핑거는 전 거래일(9890원) 대비 26.29% 오른 1만2490원에 거래를 마쳤죠.
제일테크노스는 박정식 사외이사가 과거 한 장관과 검찰에서 같이 근무한 이력이 전해지면서 테마주로 분류됐고, 한국수출포장은 최대 주주가 한 장관과 현대고 동창이라며, 태평양물산은 대표이사가 한 장관의 현대고 1년 후배라며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정치 테마주가 급부상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사실 역사가 긴데요.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서도 테마주 열풍이 불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북방외교에 공을 들였는데요. 중국과 관계 개선 기대감이 커지던 시기, 이른바 ‘만리장성 테마’가 등장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기로 했고 알루미늄 창호를 전량 납품한다’는 소문이 퍼진 데 따른 건데요. 이때 대한알루미늄 주가가 급등했고, 공사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에게 고무신을 공급한다는 소문으로 태화 주가도 상승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소문에 불과했고, 이들 종목은 급등 이후 급락세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대한알루미늄, 태화는 현재 증시에서 찾아볼 수도 없죠.
이후로도 다양한 정치 테마주가 등장했고, 등장 때마다 열풍은 거셌습니다. 특히 대선 때마다 많은 테마주가 거론됐습니다.
지난해 20대 대선 땐 여론조사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두 후보 테마주로 분류된 종목이 80개가 넘었습니다. 이때도 연결고리는 학연과 지연이 대다수였는데요. 자본시장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대선 테마주 83개 종목 가운데 44%가 대선 후보와 기업 경영인 사이 ‘공통 지인’이 있는 회사였습니다. 18%는 대선 후보와 경영진과의 사적 인연을 이유로, 16%는 학연을 이유로 대선 테마주로 묶였습니다.
19대 선거를 앞두고선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대선 후보)의 관련주가 이목을 끌었는데요. 당시 여성복 업체인 대현 경영진 한 명이 문 전 대통령과 함께 등산하면서 찍은 사진이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대현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이 대현 경영진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주가는 급락했죠.
이처럼 정치 테마주는 기업 경영진이나 주주가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정치인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기만 하면, 주가 급등락을 보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주식시장에서는 통하는 모양새죠.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테마주의 인기가 영원하지 않다는 겁니다.
사실 대다수의 정치 테마주로 거론되는 종목들은 회사의 실제 가치와 주가 흐름 간 상관관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주가 상승에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거죠.
막연한 기대감에 기댄 정치 테마주는 시세를 분출한 후 급락하는 양상을 보여 투자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실제로 다수의 정치 테마주는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주가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테마주로 꼽혔던 서연은 2020년 5월 초 3815원에 거래되던 주가가 2021년 3월 2만6000원까지 올랐는데요. 이후 급락세로 전환하며 대통령 선거 전날인 2022년 3월 8일 9630원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대 대선 국면에도 유력 후보와의 막연한 관계를 명분으로 주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정치테마주 현상이 재연됐다”며 “과거 대통령 선거 사례를 보면 기업가치와 본질적으로 관련이 없는 테마주는 결국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하락하는 경향이 공통으로 관측됐다”고 설명했는데요.
이어 “유력 후보자와 특수한 인적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거나 정책 수혜가 기대되는 기업의 주가가 비이성적으로 과열되는 현상은 선거 국면마다 반복되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정치테마주가 가격 급락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다는 걸 인식하고, 투자를 결정할 때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