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와 창펑 자오(CZ) 전 CEO가 자금세탁 묵인과 제재 위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43억 달러(약 5조5000억 원) 상당의 벌금을 내는 가운데, 공개된 기소문에는 조직적인 규제 회피 정황 담겼다. CZ는 향후 벌어질 사법 위험성을 알고 직원들과 규제 회피 방법 등을 논의했다.
21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당국의 기소문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러시아와 이란 등 미국의 제재 대상인 국가의 기업들과 사이버 범죄자, 아동학대자 등 범죄자들의 자금 세탁 창구로 이용됐다. 거래 수수료를 위해 미국 VIP 고객들의 차명 계좌를 터주고, 막대한 수수료를 얻었다. 기소문에는 이와 관련된 CZ와 직원들의 대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3월경, 한 직원이 바이낸스 미국 사용자가 약 300만 명(당시 바이낸스 사용자의 3분의 1 이상)임을 확인했다. 당시 총 사용자 수는 800만 명이었다. 2019년 6월경 자오는 고위 경영진과의 통화에서 "트래픽과 잠재 수익의 20~30%가 미국에서 차지한다"면서 "IP 추적과 고객신원확인(KYC)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 미국 전체를 차단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비즈니스 결정 중 하나일 것만, 아무것도 잃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하여 바이낸스는 미국 내 법령에 맞는 별도 거래소, 바이낸스 US를 출시했다.
이후 바이낸스는 미국 사용자를 차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마케터를 위한 별도의 거래소 API를 만들어 통해 VIP 고객을 유치했다. 2019년 6월 25일, 바이낸스 임원진 통화 회의에서 한 임원은 "약 1100명의 VIP가 일반 개인 고객보다 수익 부문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바이낸스는 대규모 미국 VIP를 잃기보다는 미국 내 연결을 숨기고 난독화하는 과정을 선택했고, 온라인 회의에서 이 전략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미국 VIP팀은 사용자에게 오프라인으로 전화를 직접 걸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연락을 취했다. 또 VIP팀이 별도의 API를 사용하는 계정을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또 이를 기록에 남기지 않기 위해 내부 월간 보고서에 국가별 이용자 비율에서 미국을 'UNKWN'(Unknown·알려지지 않은)으로 처리했다.
바이낸스 내부 기록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미국 사용자들은 바이낸스 거래소에서 수조 달러를 거래했다. 이에 따른 바이낸스의 수익은 16억1200만 달러(약 2조1025억 원)에 달한다.
물론, 바이낸스도 제재 국가의 거래를 방조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또 제재국 거래를 차단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8년 10월 한 직원은 창펑 자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CZ, 나는 그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신에게 우리가 현재 제재 국가의 IP 주소를 차단하는 작업을 하리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게 나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만약 Fincen이나 OFAC에서 제재 국가 이용자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조사를 시도하거나 국제무대에 크게 알리려 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CZ는 “네, 진행합시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바이낸스는 VPN을 통해 우회하는 제재 국가에 대해 적극적인 차단 조치를 하지 않았다. 미국 및 포괄적 제재 국가에서 바이낸스 거래소에 대한 접근이 계속 이뤄졌다. 이들 국가에서 VPN을 이용해 바이낸스 거래소에 접근한다고 말한 임원의 발언도 기소문에 담겼다. 바이낸스는 사용자에게 완전한 KYC를 요구하지 않았고, 일부 담당자들은 이란 신분증을 제출한 사용자에게 다른 신분증을 제출하도록 조언하기도 했다.
한편, 은행보안법(BS)과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CZ는 내년 2월 선고를 앞두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최대 1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23일 현재 미국 연방 검찰은 CZ가 2월 선고를 앞두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법원에 출국금지를 요청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