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바뀌며 변해가는 간첩의 형태와 개념들
과거 간첩 신고 요령이다. 그 시절 간첩들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잠입했기 때문에 이러한 간첩 신고 교육이 흔했다.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들은 1950년대에 집중됐다. 북한은 특수부대나 공작원을 남파시켜 요인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등 사회 불안감을 조성했고 우리나라에는 반공의식이 강조됐다.
무장공비 김신조와 124군부대원 31명은 북방한계선을 넘어 밤에는 이동, 낮에는 무덤을 파고 들어가 휴식하며 청와대를 향해 진격했다. 경찰과 마주친 이들 중 일부는 사살되거나 북한으로 도주했고 그 중 살아남은 김신조는 경찰과 오랜 대치 끝에 결국 투항했다. 1968년 경찰에 붙잡힌 김신조가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겠다는 강렬한 한 마디를 남겼다.
‘간첩’이라면 김신조와 같은 무장공비 또는 공작원 등을 떠올린다. 미디어로 접한 간첩의 이미지다.
꼭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와야만 간첩이 아니다. 종북세력도 간첩이다. 1988년 김영환은 남파간첩 윤택림과 만나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했고, 반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평양에서 정식 입당식도 치렀다. 김영환은 김일성을 만나 공작금 20만 달러를 받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이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라는 지하조직을 만들고 학생운동, 통일운동을 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며 정보 취득이 손쉬워지고, NL(민중해방) 등 좌익세력이 축소되자 직파간첩을 통한 세력 확장보다 새로운 형태의 간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정당에 북한 세력이 침투한 2006년 일심회(386간첩) 사건이 대표적이다.
1989년 밀입북해 조선노동당에 충성 서약을 한 미국 시민권자 장민호가 일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386 학생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포섭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내 정치권 지하세력 확보를 위해 활동했다. 이 일로 인해 일부 진보 성향 정치인들이 간첩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일심회는 적국인 북한을 이롭게 하거나 추종했다. 기밀을 탐지하고 북한에 정보를 전달하는 기존의 간첩 개념과는 다르다. 하지만 일심회 역시 간첩으로 불린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잠입해 국가기밀을 탐지하는 사람부터 국가기밀을 북한에 누설하는 사람,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까지 간첩의 범위는 넓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며 간첩의 범위와 개념도 바뀌는데 우리는 이들 모두를 ‘간첩’으로 묶어버린다. 그래서 “설마.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에 있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검찰 내 ‘공안통’으로 불리는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을 기밀을 탐지하는 좁은 개념보다 적을 이롭게 하거나 추종하는 경우도 간첩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은 많은 간첩 분류 중에서도 직파간첩보다 자생간첩이 많다고 보고 있다. 고정간첩은 그 수가 적다.
자생간첩이라고 해서 꼭 주사파 출신인 것도 아니다. 최근 자생간첩들은 과거부터 북한에 관심이 있었거나 사업상 북한을 자주 접촉하며 북한과 연계되는 식으로 간첩이 된다고 한다.
2009년 국정원에서 자생간첩을 검거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동남아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호의를 베풀어주는 누군가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는 북한 공작원이었다. 이 학생은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 그 북한 공작원에게 우리나라 정세와 주요 부대 위치 등 정보를 이메일로 전달했다. 그는 한 번씩 동남아로 가서 그 공작원을 만났고 공작금을 수령했다. 결과적으로 간첩이 됐지만 주사파 출신이거나 학생운동을 한 적도 없다.
2010년대 이후 이적단체로 인정된 ‘코리아연대’를 두고 간첩으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이적활동을 했지만, 국가보안법 등 법적으로 문제가 될 간첩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최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는 범민련남측본부와 코리아연대, 경기동부연합 등 친북단체를 항상 경계하지만 이들을 간첩이라고 일방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간첩 형태는 다르다.
최 변호사는 이어 “북한은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기 위해 간첩을 계속 활용하겠지만 예전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라며 “우리나라처럼 분단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과거 반정부 세력을 반국가세력, 친북세력으로 몰아가는 경험이 있었던 우리로서는 간첩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가질 필요가 있다. 시대에 맞는 안보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간첩은 언제나 있을 수 있고 우리 옆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최창민 법무법인 인화 변호사
서울중앙지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 제1부장검사
대검찰청 공공수사부 선거수사지원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