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망 장애로 ‘디지털 정부’ 입간판이 무색하게 됐다. 단 일주일 사이에 릴레이 경주를 하듯 연속적으로 불거진 장애 증상이 4건이다. 지난 17일 ‘새올행정시스템’이 먹통이 돼 사상 초유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를 사흘간 빚었다. 22일 서울 일부 주민등록시스템에, 23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문제가 생겼다. 24일엔 정부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연쇄 사고도 한심하지만, 원인 분석, 대책 수립 등 사후 대응이 어설픈 점은 더 큰 문제다. 1976년 디지털 정부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 반세기 가깝게 체제 홍보의 단골 소재로 썼던 ‘전자정부 선진국’은 대체 어디 있나. 가장 치명적인 것은 조기 원인 파악조차 안 돼 국민 불신과 불안감을 키운 부분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능력도 없는 것은 아닌지 정부는 엄중히 자문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그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원인 및 향후 대책 브리핑’에서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라우터의 포트 불량을 17일 발생한 먹통의 이유로 진단했다. 앞서 원인으로 지목했던 L4(네트워크 장비의 일종) 스위치의 문제가 아니라고 번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진단을 100% 믿고, 당국의 대응 능력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기는 이미 어렵게 됐다. 실로 뼈아픈 대목이다.
디지털 정부의 가장 큰 기반은 국민 신뢰다. 다수의 유권자, 납세자가 등을 돌리면 예산 할당부터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국민 불신이 움틀 사각지대를 깨끗이 털어내야 한다. 미봉책은 금물이다. 정부 행정 전산망은 복잡한 시스템이어서 특정 부문의 물리적 손상 때문에 광범위한 먹통 사태가 발생했다는 정부 해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부터 경청할 필요가 있다. 더욱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려면 귀를 넓게 열어야 한다.
이번 4건의 사고는 평상시에 발생했다. 전쟁도, 공황도, 관련 분야의 파업도 없었다. 현재로선 외부 해킹 공격이 있었던 것으로 믿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연쇄 먹통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초래됐다. 평상시에 이럴 수 있다면 비상시엔 더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사회, 경제, 국가안보에 미칠 피해를 미리 방지하려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정부는 10년 만에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 제한을 풀겠다고 했다. 중소기업 기술만으로 공공 전산망을 제어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게 된 모양이다. 시대착오적인 현행 규제 탓에 정부 시스템 개발·운영에 참여하는 업체가 1400여 개나 된다. 역대 정부가 계속 지도 없이 미로를 헤매는 꼴의 자충수를 둬온 결과가 이렇다. 통합적 대응이 가능할 까닭이 없다. 위기가 때론 기회다. 디지털 정부를 흔드는 위해 요소를 차제에 정밀 점검해야 한다. 2019년부터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 머무르는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구축 사업’에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정부 전산망 마비를 사회재난으로 취급하는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