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10·26사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김재규가 쏜 총에 박 대통령이 사망하며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곧이어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습니다. 동시에 부통령이었던 최규하가 대통령에,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에 임명됐고요. 여기서부터 영화 ‘서울의 봄’이 시작됩니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며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역사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한국의 근현대사는 파란만장한 사건들로 가득한데요. 일제의 식민 통치, 한국전쟁, 분단, 부정선거, 군부독재 등 근대 이후 한민족은 끝없는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보내왔습니다. 크게는 국가의, 작게는 개인의 역사를 바꾼 다양한 근현대사 사건들은 영화감독들에게 매력적인 소재였죠.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을 포함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10·26 사태 이후 찾아온 정치적 과도기와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이야기를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다루고 있는 것인데요. 위 세 영화를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면, 1979년 김재규의 총성과 함께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며 대한민국에는 그동안 억눌린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열망하는 ‘민주화 물결’이 일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이어지는 이 시기가 마치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운동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서울의 봄’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는데요.
문제는 민주화 물결과 함께 신군부 세력도 밀려들어 왔다는 점입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이 주동하고 군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중심이 돼 군사반란을 일으켰죠. 먼저 이들은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를 강제 연행했습니다. 정승화의 연행 소식을 들은 정병주와 장태완이 수도권 인근의 병력을 동원해 신군부의 반란에 맞서고자 했지만, 이들을 진압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권 장악에 성공한 신군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민주헌정을 중지하는 등 군정으로의 회귀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섰죠. 그러나 ‘자유’와 ‘민주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며 신군부 세력에 반발했습니다. 그런데도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군부에 저항해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광주시민들을 강경 진압하면서 결국 ‘서울의 봄’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특히 정권을 장악하려는 신군부와 이에 맞서는 진압군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존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는데요. 전두환이 전두광(황정민 분)으로, 장태완이 이태 신(정우성 분)으로, 정승화가 정상호(이상민 분)로, 노태우가 노태건(박해준 분)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이 영화들은 모두 군부가 평범한 인물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이 인권과 실존을 위협하던 시대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요. 영화를 감상한 관객은 해당 시기를 생생하게 느끼고 기억하게 됩니다. 영화가 시대의 기록물이자 교육 자료로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죠.
실제 ‘서울의 봄’ 흥행 이후 SNS 등에는 ‘근현대사 배경 영화 타임라인’, ’영화로 배우는 근현대사’, ‘서울의 봄 예습·복습용 역사 정리글’등과 같은 콘텐츠들이 공유되며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는 직장인 김 모씨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과거를 영화를 통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