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논란에 은행권 곤혹
금융당국 시장감시 책임 느껴야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담뱃값을 2000원이나 인상했다. 기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흡연자지만 당시 흔히 피우던 담배제품 평균 가격이 2500원 정도라는 건 알고 있었다. 500원, 800원도 아닌 한 번에 2배가량 올린 셈이다. ‘서민 주머니 털어 곳간 채운다’는 비판이 쏟아질 만했다. 당시 주변 흡연인들의 원성과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담배는 필수품인데 국가가 전매권을 담보로 ‘삥’을 뜯는 거나 다름없으니 이해도 갔다.
“차라리 담배를 못 팔게 해라.” 아예 담배 판매를 금지하라고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도 허다했다. 건강을 해친다면서 제품을 제조해 팔고 가격을 올려가면서 왜 금연정책을 하냐는 거다. 가격을 올려서 흡연자를 줄일 요량이면 아예 판매를 못하게 하라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국가는 안다. 이렇게 가격을 올려도 여전히 피울 것이라는 걸.
금융권에 또다시 불완전판매가 이슈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급락에 은행들이 판 주가연계증권(ELS)의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면서다. 1일 기준 H지수 ELS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42건이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ELS 가입자 중 상당수는 고령자로 알려졌다. 제2의 라임, 디스커버리 사태 등과 비교될 만하다. 그 당시와 다르다면 ‘금융소비자보호법’이라는 ‘허들’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홍콩 H지수 ELS 사태’의 핵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은행이 파생상품을 팔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은행 영업의 최말단 직원은 항상 실적 압박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혼자 알아보고 투자하는 세대가 아니라, 창구를 직접 찾는 고령자층이 소위 ‘영업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더욱이 금융상품은 갈수록 진화한다. 파생상품은 특히 어렵다. 판매자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을 고령자나 금융에 무지한 고객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은행 직원이 상품의 구조와 향후 벌어질 변수 등을 자세히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아직 수조 원대 손실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 여부도 지켜봐야 한다. 물론 한번 ‘교훈’을 얻은 은행들은 ‘금소법’ 아래 녹취와 수십번의 ‘사인’을 통해 본인이 제대로 상품을 인지시킨 후 팔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파생상품을 팔면 불완전판매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담배가 그리 해롭다면서 왜 팔까라는 의문을 확장해보면, 오랜 세월 동안 불완전판매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정부는 왜 은행의 파생상품을 여전히 허용하는 걸까로 이어진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대원칙을 놓고 보면, 판매의 투명성은 첫 번째 원칙이다. 불완전판매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품은 당국이 규제해야 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복기해보자. 투자은행들은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과 여러 회사채 등을 마구 버무려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었다. 심지어 이를 잘게 쪼개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주택 가격이 단기에 폭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지만 현실이 되면서 전 세계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판매자들이나 투자자들 모두 이 복잡한 상품의 위험을 이해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미국 금융당국이 이를 방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은행권의 H지수 ELS 판매를 놓고 ‘자기 면피만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시장 감시에는 소홀하다가 사고가 터지니 또 은행 비판만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소비자 보호가 원칙인 금융당국은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못 팔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