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떠나고 아들은 심각한 사춘기를 겪었다. 가출을 빈번히 일삼았다. ‘이 녀석이 또 집을 나갔는데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언젠가 아들이 감기로 진료실을 찾았다. 어느새 집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아이였는데 지금의 아이는 영 다른 아이 같았다. 나는 어느새 그의 심정과 동화되어 이 녀석을 어떻게 훈계해야 하나, 어떻게 따끔하게 혼내 줘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나, 진료는 뒷전이었다.
아이에게 ‘아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아빠 혼자 너희 둘 키우시는 거 알면 이러면 안 된다’ 등 아들에게 할 잔소리를 쏟아내 볼까, 별생각을 다 하다 ‘잠을 푹 자야 한다, 약 잘 먹어라’ 하고 의사가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돌려보냈다.
그 뒤론 그와 만나면 자식 걱정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틀어진 그의 어깨가 더 틀어져 보였고 지쳐 보였다. 한번은 병원을 찾은 그의 등에 청진기를 갖다 대고 들리지 않는 폐 소리를 애써 들으려 해 보았다. 그때 내가 들은 소리는 그의 폐음이 아니라 그의 한숨 소리였다.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우나, 인생이 내는 한숨 소리…. 내 청진기는 한 곳에 멈춰 섰고 청진기를 든 내 손은 그의 등에서 멈췄다.그가 눈치를 챘는지 못 챘는지 알 순 없지만 나는 오십 대의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잘 버티시고 있다고.
얼마 전 머리를 짧게 자른 그의 아들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고 했다. 휴가 중에 진료받으러 들렀다고 했다. 제대하면 뭐 할 거냐고 물었다. 공부해서 대학에 가 보겠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고 잘했네, 잘 생각했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말이 사실인지 물론 제대하고 나서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내가 아빠인 것처럼 기뻤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가정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