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건수 900건 이상…2위 한국보다 두 배 많아
애플 등 공급망 이전에 협력사 생산 거점 옮겨
중국 기업들이 ‘포스트 차이나’이자 미국의 공급망 파트너로 꼽히는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6일 베트남 외국투자청 자료를 인용해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한 중국의 1~11월 대베트남 투자 금액(인가액 기준)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급증한 83억 달러(약 10조8896억 원)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대베트남 투자는 전체 투자금액 288억 달러 가운데 약 30% 가까이를 차지했다.
중국은 신규 베트남 투자 건수에서도 900건 이상을 기록하면서 외국인 투자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2위인 한국과 비교했을 때에도 2배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기업의 경우 싱가포르나 태국 자회사를 통해 투자하는 사례도 많다. 이 경우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중국의 대베트남 투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애플 등 미국 주요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에 따라 중국의 협력 업체들까지 덩달아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8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 공장에 1억44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베트남 누적 투자금액은 4억 달러를 돌파했다.
애플 에어팟을 위탁 생산하는 리쉰정밀도 베트남 북부 박장성에 3억300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미국과 중국, 대만의 역학관계가 중국 기업의 대베트남 투자를 촉진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을 펼치면서도 베트남과는 공급망 등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국 기업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태양광 발전 패널에서도 베트남 생산이 늘고 있다. 태양광 패널 최대 제조사 트리나솔라는 최근 베트남에 4억2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은 불공정 거래와 인권 문제를 이유로 중국산 태양광 제품 수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베트남으로부터의 수입은 관세를 면제하고 있다.
중국에 주요 생산거점이 있는 세계 최대 아이폰 위탁생산업체 훙하이정밀공업과 콴타컴퓨터 등 대만 기업들도 베트남에 진출해 다른 공급업체들의 이전을 유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무역진흥기구(제트로) 하노이 사무소의 하기와라 료다로 소장은 “향후 전기차 분야에서도 베트남으로의 이전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왕촨푸 비야디 회장은 5월 베트남을 방문해 쩐홍하 부총리와 만나 베트남에서의 전기차 생산 의향을 전달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 궈슈엔가오커도 베트남 현지에서 공장을 짓고 있다.
다만 만성적인 전력 부족은 해결 과제로 꼽힌다. 베트남 현지 기업들은 매년 여름 당국의 절전 요청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신규 투자를 꺼리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또 베트남 정부가 내년 1월부터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를 도입하기로 확정함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는 점도 투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