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콘텐츠 범람 시대…“이미지, 진지한 분석 대상”

입력 2023-12-0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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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콘텐츠, 기존 예술과 어떻게 다른지 탐구해야
이솔 "가볍고 부정적인 '이미지'…새롭게 이해할 필요 있다"
콘텐츠에 거리 두고 진지하게 분석ㆍ사유 중요해져

"마블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Marvel movies are not cinema)."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이다. 격렬한 활극과 장면의 화려함에만 몰두하는 마블영화에는 인간을 사유하게 하는 공간이 없다. 영화의 미학적 가치, 삶에 대한 성찰이 전무한 흥미 위주의 영화는 테마파크(Thema park)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코세이지가 2019년에 했던 말을 현재에 대입하면, 상업광고로 점철된 클립, 쇼츠, 릴스 등 짧은 영상 콘텐츠는 거대자본의 세례를 받은 마블영화의 다른 형태들이다.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일등석 기내식 메뉴들을 탐닉한다. 현실에서 감각되는 것들이 가상의 이미지로 환원되면서 세상이 콘텐츠로 변하고 있다.

5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본지와 만난 책 ‘이미지란 무엇인가’의 저자 이솔은 “콘텐츠가 갖는 문제점들이 있다”면서도 “그것을 보수적으로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콘텐츠가 예전의 예술 장르와 어떻게 다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는 더 조각나고, 짧고, 산만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지점들이 가지는 한계가 있다. 쉽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측면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파생하는 어떤 역동성이나 저력 또한 분명히 있다”고 부연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제1의 목적은 ‘팔리는가’이며,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기준들은 부수적인 것 내지 장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귀엽기만 하고, 재미만 있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염증’이다. ‘나도 우리 강아지 찍어서 올려야지’라는 생각에 따라 만들어진 콘텐츠들은 ‘가치’가 아니라 ‘소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지긋지긋한 감각으로부터 자꾸 새로운 걸 시도해서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지금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찾고, 만들고 있다. 그게 이미 출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픽사베이)

코로나19로 극장 산업이 무너지면서 영화의 형태는 물론 관객의 태도 역시 변화하고 있다. 제작자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극장용과 OTT용 영화를 구분한다. 사람들은 지하철과 버스, 집에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 3시간짜리 영화를 30분으로 압축한 리뷰 영상을 보며 영화를 다 봤다고 착각한다. 영화관에 가는 일은 이제 중대한 ‘선택’과 ‘결심’의 영역이 됐다. ‘영화 예술’은 ‘영상 콘텐츠’로 변하는 중이다.

저자는 “민음사에서 나온 인문잡지 ‘한편’에 시네마가 사라진 현실을 통탄하는 펠리니의 글을 인용한 적이 있다. 이미 영화의 시대가 조금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영화 역시 기존의 다른 예술처럼 주의를 기울여서 감상해야 하는 장르가 됐다. 영화관에 가는 게 미술관에 가는 것처럼 부담되는 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이미지는 실재로서의 세계를 외면하게 하는 불온한 가상이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이미지는 실재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우리를 인도한다.

(픽사베이)

스크린 타임(screen time :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칭하는 용어)이 갈수록 늘어나는 시대다.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이다. 원본은 사라지고 그것을 모방한 이미지만 도처에 깔렸다. 실재와 이미지의 지위가 뒤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콘텐츠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따금 내가 즐기는 콘텐츠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것이 선사하는 좋거나 나쁜 감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이다.

저자는 사르트르, 베르그손, 들뢰즈 등 이미지를 탐구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경유해 ‘왜 이미지인가?’, ‘이미지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던진 질문 속에서 독자들은 이미지의 시대, 콘텐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힘은 무엇이고, 그 힘을 통해 어떤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는 “이미지를 진지하게 분석해야 할 핵심적인 주제인 것 같은데, 철학에서는 늘 이미지를 가볍고 부정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했다. 이미지에 대한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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