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어제 전임 문재인 정부가 2020년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피격) 사건’을 은폐·왜곡했다는 최종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당시 정부가 사망 전 희생자를 방치했고, 북한의 피살·시신 소각 후에는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결론 냈다. 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지 말문이 막힌다.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인 고(故) 이대준 씨는 3년 전 9월 22일 서해 소연평도 인근에서 근무 중 실종됐다. 약 38시간 동안 바다를 표류하다 북한군에 의해 희생됐다. 이 씨의 인권이 짓밟히고 생명을 잃을 동안 이 씨를 지켜줄 국가는 없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국가안보실은 우리 군의 보고로 정황을 인지하고도 방치했다. 국방부는 북측에 이 씨의 신변 안전 보장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해양경찰은 실종 사건을 수색하던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통일부 담당 국장은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안보사령탑인 서훈 안보실장 등은 ‘칼퇴근’을 했다. 이때만 해도 이 씨는 살아 있었다.
더 기막히게도, 안보실은 이튿날인 9월 23일 새벽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씨의 피살에 대한 보안 유지 지침을 내렸다. 국방부는 합참에 비밀자료 삭제를 지시했다. 전날 밤 이 씨가 사망했는데도 생존 상태인 것처럼 작성한 안내 문자를 기자들에게 발송했다. 이 씨 생존 시에는 하지 않았던 신변 안전 보장 대북 전통문을 띄웠다.
대국민 사기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보실은 ‘자진 월북’ 정황이란 것을 언론을 통해 전파했다. 국정원은 지켜만 봤다. 해경은 9월 24일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닷새 후 2차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못 박았다.
조작극은 계속 이어졌다. 해경은 이 씨의 표류 예측 결과 분석과 수영 실험 결과를 왜곡 발표했다. 이 씨가 자발적으로 북한 해역에 간 것이라고 짜 맞추기를 했다. 비공식 심리분석 결과 등을 내세워 이 씨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았다. 이마저도 어린 자녀들이 있다는 점은 감추고 도박·이혼 등의 부정적 이미지만 강조해 받아낸 심리분석이었다고 한다. 국가가 국민 생명과 인권을 외면하고, 더 나아가 인간 존엄성마저 파괴했다.
서 전 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은 이 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야권에선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인데도 여당의 국정조사 요구는 거부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재는 게 편이란 것인가.
5000만 국민은 정부가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어 주권을 위임한다. 세금도 낸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 생명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진 월북’ 조작이나 한다면 어찌 대해야 하나. 사법 절차를 통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 정치적 파장을 신경 쓸 계제가 아니다. 지위 고하를 가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