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현대전의 성격을 간파한 후 북한은 전자정보전 능력을 꾸준히 길러왔다. 수도 서울에는 주요 도심 인프라인 전기·통신·데이터 관련 시설이 몰려 있어 EMP(전자기펄스) 공격은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파괴자’, EMP 위협에 대비한 ‘K-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오후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북 EMP 위협과 서울 도시기능 유지방안’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북한 EMP 공격 피해를 예상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EMP는 고출력 전자기파로, 전력망·통신장비·군사시설·전자기기 등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핵탄두를 공중에서 폭파시키는 방식의 핵 EMP와 고폭 화약의 폭발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의 비핵 EMP로 나뉜다.
11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전시 방호대책 포럼을 연 데 이어 두 번째 자리를 마련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두 군데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한반도 상황은 늘 긴장을 요한다”며 “EMP 심각성을 실감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을 텐데 서울시 포럼 시리즈가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오 시장은 페이스북에도 ‘안보는 제1의 민생’이란 글을 올리고 북한이 핵무기, 화학무기, EMP 등 서울을 공격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급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대비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 이상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력연구센터 북한군사연구실장은 “핵무기를 고고도에서 터트렸을 때 EMP가 자동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 EMP 능력을 보유했다고 보는 게 맞다”며 “북이 작년 11월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면서 작전지휘체계를 마비시킨다고 표현한 건 EMP 시험을 시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 상공에서 핵 EMP가 폭발할 경우 위력 범위가 한반도 전역에 해당한다”며 “정전사태, 통신망·인터넷·데이터센터 마비, 항공기 추락·이착륙 제한, 주유소 화재·철도운행 중단·차량기능 고장·상하수도 기능 마비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심 주요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켜 ‘문명사회의 재앙’이라 불리는 EMP 위협이 ‘발등의 불’로 닥쳤지만, 대비실태는 부족하다. 이 실장은 “비핵 EMP는 아예 대비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설치·운영 규정 모순과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으로 한정된 지역만 방호를 하고 있고 전문가도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도심 주요 인프라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방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도시의 혈관망·신경망·뇌에 비유되는 전기·통신·데이터 시설을 방호하고, 또 복구하는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전력 사용량은 39%로 높은 반면 서울의 자립률은 8.9%로 지자체 중 꼴찌다. 도심 속 비상발전기를 잘 활용하기만 해도 추가적인 전력 공급 없이 대비가 가능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통신은 한국형 스타링크 개발을 주목해볼 만하다. 데이터의 도시화 현상은 특히 심각하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해 수도권은 원전 40기가 있어야 운영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소규모 분산형 데이터센터 운영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이 실장은 “도시형 방호체계인 K-인프라 개발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서울을 만들어야 한다”며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