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들어 맥주·소주 가격, 9개월래 최고 상승
주류업계가 최근 소주, 맥주 등 제품의 가격을 앞 다퉈 올리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송년회와 회식 등 모임 자리가 몰리는 연말 주류 성수기를 노려, 국내외 주류사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리는 행태에 대해 ‘뻔뻔한 인상’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전문가들은 주류업체의 묻지마 가격 인상 릴레이가 되레 주류 소비에 거부감을 키워, 연말 매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비관론도 내놓고 있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맥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2.45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1%의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이는 올해 2월(5.9%) 이후 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같은 기간 소주의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지난해보다 4.7% 상승해 지난 2월(8.6%)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맥주와 소주의 물가 상승세는 주류 제조사들의 출고가 인상과 식당·주점등의 판매가 인상 요인이 주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이미 업체들은 앞다퉈 소주와 맥주 가격을 올린 상태다. ‘참이슬’로 소주 점유율 1위인 하이트진로는 지난달부터 주요 제품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주력 소주 제품인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은 6.95% 올렸고, ‘테라’와 ‘켈리’ 등 맥주 품목 출고가는 평균 6.8% 인상했다. 국내 가정 맥주 판매율 1위 제품 ‘카스’를 보유한 오비맥주도 10월부터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 가격을 6.9% 인상했다.
‘제로 슈거(Zero Sugar)’ 소주 열풍을 주도한 롯데칠성음료도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할 분위기다. 최근 기관투자가 대상 컨퍼런스 콜에서 ‘새로’ ‘처음처럼’ 등 소줏값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클라우드’와 ‘크러시’ 등 맥주 가격은 인상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주류가격을 올린 경쟁 업체들의 사례로 볼 때, 소주 가격 인상 폭은 평균 6.9% 내외로 점쳐지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소줏값 인상을 논의하고 있지만, 정확한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 소주 업체와 해외 주류기업도 가격 인상 흐름에 동참하면서 주류 물가 인상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보해양조는 이달 1일부터 ‘잎새주’를 비롯해 ‘복분자주’ ‘여수밤바다’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최저 5.9%, 최대 9.1% 인상했다. 대선주조도 지난달 17일 ‘시원’과 ‘대선소주’, ‘대선 샤인머스켓’ 제품 출고가를 6.95% 인상했다.
위스키 업체도 가격 인상 대열에 끼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이달 30일부터 ‘조니워커 레드’ ‘조니워커 18년’ 등 위스키 일부 제품과 기네스 드래프트 등 맥주 등 7종의 가격을 평균 7.1% 인상할 계획이다. 다만 베스트셀러인 ‘조니워커 블루’와 ‘조니워커 블랙’의 가격은 유지된다. 이보다 앞선 10월 페르노리카코리아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위스키 ‘발렌타인 12년’ 가격을 4만7900원에서 5만3100원으로 10.9%, ‘로얄살루트 21년’은 34만5200원에서 37만2900원으로 8% 각각 올렸다. 이를 비롯해 칼루아 등 수입산 양주 12종의 평균 인상률은 5.6%였다.
국내 주류업체는 소주의 경우, 제품의 원재료인 주정과 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출고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10개 주정 회사의 주정 판매를 전담하는 대한주정판매는 올해 4월 소주의 원재료인 주정 가격을 9.8% 인상했다. 소주병을 만드는 제병 업체들도 올해 2월부터 순차적으로 180원의 병 납품가를 220원으로 올렸다. 2분기 들어 출고가 인상을 검토했던 주류업체는 정부의 물가 억제 요청에 따라 가격 인상을 보류했다.
하지만 10월부터 스물스물 출고가를 인상하면서 대형마트와 편의점을 비롯해 식당·주점에서 주류를 마시려는 소비자의 물가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올 2분기 들어 5000원대로 바뀐 소주 맥주 가격은 최근 강남 일부 매장에선 7000~8000원에 팔리고 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원자재, 인건비 등 가격 인상 요인이 많았다”면서 “연말 특수를 노리고 인상을 단행한게 아니라, 정부의 압박으로 억제했던 것이 최근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수요가 많이 급증하는 연말 시기에 주류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라며 “인상 폭을 보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도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식당·술집 등 실생활에서 소비자들의 술값 불만이 쌓이면 의도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반발 현상이 일어나 오히려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