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겨울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2월 한겨울에 접어들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는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부산 등 남쪽지역엔 봄철에 피는 꽃인 벚꽃 개화 목격담이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올해 겨울은 따뜻한가 싶었더니 이번 주말 기온이 또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기온만이 아닙니다. 전국 곳곳에 이례적인 ‘겨울 호우’가 쏟아지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강원 지역에는 29년 만에 대설 특보와 호우 특보가 동시에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사계절을 하루에 겪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지경인데요. 이 같은 이상 기후 속출에 2023년이 ‘기후위기 일상의 해’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12월에도 달의 절반이 지나갈 때까지 개나리가 필 정도로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11일 강원 지역에 대설특보와 호우 특보가 동시에 내려졌습니다. 이맘때면 폭설이 오던 지역에 여름철에나 볼 법한 비가 내린 것인데요. 같은 날 고도가 높은 강원 산지엔 대설 특보가 발효됐습니다. 한 특보 구역에 호우 특보와 대설 특보가 동시에 발령된 것인데요. 이는 기상청이 특보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최초입니다.
이날 하루에만 강원도 강릉시에 91.2mm의 비가 내렸는데 이 역시 1911년 기상 관측 이래 12월 일 강수량 최다기록입니다. 연이은 고온에 사상 최초로 강원 영동 지역에 12월 중 호우특보가 발효되자 스키장을 찾은 이용객들은 스키복 위에 우의를 입고 슬로프를 누벼야 했다고 하는데요. 용평리조트 슬로프 곳곳에서 눈이 녹기 시작해 살얼음처럼 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겨울비인데 적게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강원 삼척, 양양에는 사흘 만에 200mm 안팎 폭우가 쏟아졌는데요. 12월 하루 강수량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곳도 많았습니다. 이 역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실 겨울에 비가 내리는 건 드물지 않지만 여름처럼 ‘기습 폭우’가 쏟아지는 기이한 현상은 기후변화로 바다가 예전보다 따뜻해 수증기를 함유할 수 있는 양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해수면 온도가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바닷물이 증발해 대기 중에 쌓이는 수증기 양이 많아지고 이 수증기는 눈과 비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해마다 조금씩 지구 기온이 상승하는 데다 엘니뇨 현상 등으로 남서풍이 강화하면서 폭우가 만들어지는 환경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기록적인 폭우 이후 주말부터는 다시 강력한 한파가 찾아옵니다. 토요일인 16일부터 북서쪽에서 한기가 몰려오면서 기온이 하루 만에 10도가량 급하락하면서 전국적으로 한파 특보가 발령되는데요. 예년 기온을 최대 20~30도나 밑도는 강력한 한파가 시베리아와 만주 전역을 뒤덮은 가운데 시베리아 서부에 발달한 상층 고기압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한반도를 향해 한파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한파가 토요일부터 고온다습한 공기를 밀어내고 우리나라를 점령하게 되는 것인데요.
남쪽의 따뜻한 기단과 북쪽의 더 차갑게 식고 있는 시베리아 기단이 만나는 최전선에 한반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양 기단의 균형이 깨질 때 기록적인 고온과 저온이 나타나는 것인데요. 북극의 기온이 오르고 수증기가 증가하면서 많은 양의 눈이 내려 햇빛을 반사하는 것은 시베리아 기단이 더욱 차가워지는 이유죠. 온난화가 심해질수록 극단적 날씨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일찌감치 올해 기후 전문가들은 여느 때보다 유독 활발했던 엘니뇨가 올겨울 한반도의 이상 기후를 부를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앞서 6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봄 시작된 엘니뇨가 여름 동안 빠르게 발달해 올해 11월부터 내년 1월 정점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엘니뇨 여파로 올겨울 비교적 따뜻하겠지만 이상기후로 폭설이 내리거나 기습 한파가 찾아오는 등 재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인데요.
한반도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이 연중 이어지는 이상 고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불볕더위로 고생했던 스페인에는 겨울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12일(현지시간) 스페인 국립기상청(AEMET)에 따르면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 기온이 섭씨 29.9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입니다.
때아닌 더위에 스키장 리프트는 멈췄고 슬로프에는 눈 대신 풀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한여름을 맞은 지구 남반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9일 호주 시드니 공항은 최고기온 43.5도를 기록해 1929년 기상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기록했습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지난달 중순께 42.6도를 찍으며 올해 최고기온을 갈아치웠습니다.
올해 전 지구 표면온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전망이라기보다는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2023년 기온이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2016년을 넘어섰고, 12만 5000년 전 마지막 간빙기 이후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기후변화를 둘러싼 경고음이 연일 울리다 못해 임계치마저 넘을 태세입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2개월 동안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전(1850~1900년)보다 섭씨 1.32도 높아 역사상 ‘가장 더운 12개월’로 기록됐는데요. 지금까지 12개월 단위로 지구 평균기온을 쟀을 때 가장 더웠던 때는 2015년 10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였는데 당시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29도 높았습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는 12만5000년 전 마지막 간빙기 이후 올해가 가장 뜨거운 해가 된 것은 사실상 확실하다는 전망을 공식화 했는데요.
이런 가운데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설정한 온난화 제한선인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 1.5도 상승’이 내년에 뚫릴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마저 나왔습니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임계치로 1.5도가 제안됐지만 지구 기온은 앞으로 1.5도를 넘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2015년 세계 195개국은 프랑스 파리에 모여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를 넘치 않도록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우고 그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파리기후협정을 맺었는데요. 영국 기상청은 산업화 이전 평균 대비 지구 온도 상승 폭이 내년에 1.34~1.58도 사이가 될 것이며 중앙 추정치는 1.46도라고 예상했습니다.
분석을 주도한 영국 기상청의 닉 덕스톤 박사는 “이 예측은 10년마다 0.2도씩 오르는 지구 온난화 추세와 일치하며 엘니뇨 현상에 의해 강화됐다”며 “내년에 최초이자 일시적으로 상승 폭 1.5도를 초과할 합리적인 가능성을 예측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17일 일시적이기는 하나 관측 사상 처음으로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평균 대비 2.06도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던스톤 박사는 “1.5도를 일시적으로 초과하는 것이 파리협정 위반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1.5도를 넘는 첫해는 분명히 기후 역사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지노선이라고 불리는 지구 평균온도 1.5도 상승이 현실화 될 경우 특별한 조치 없이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지구가 너무나 빨리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기후 변화는 식량 문제부터 시작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속도를 늦추는 데 전 지구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