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영어ㆍ현지화ㆍ특화 전략으로 도전장
중국 AI 내수용에 머물러…영국ㆍ인도 등은 AI 대중화 사례 전무
“한국, AI가 더 다양한 나라서 개발 가능 희망 불 지펴”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간) 집중 조명했다.
한국은 영어 이외 언어와 현지 문화, 전문분야 특화 등을 중심으로 공략하는 전략을 펼치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AI 지배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고 NYT는 분석했다.
오픈AI의 챗GPT와 구글 바드,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세계에서 현재 가장 인기있고 성공적인 AI 챗봇은 영어와 서구 관점의 문화적ㆍ언어적 우위가 반영됨에 따라 AI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AI 기술이 소수 미국 기업의 전유물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고객을 위한 AI를 구축하는 등 비영어권 언어에 집중함으로써 AI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완화하고 있다고 NYT는 짚었다. 동시에 AI가 더 다양한 언어, 문화, 국가에서 개발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불을 지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네이버를 필두로 LG, 삼성전자, KT, 카카오 등 한국 기업의 AI 개발 현황과 전략을 소개했다. NYT는 “한국은 여전히 AI 경쟁에서 미국보다 수개월 뒤처져 있으며, 완전히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도 “네이버, LG 등과 같은 기업들은 미국이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것과 달리 특정 언어, 문화, 산업에 특화된 AI를 개발하면 미국과 경쟁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의 임용 교수는 “한국의 AI 환경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다양하다”면서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 특성은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맞게 AI 시스템을 맞춤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장려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미국의 AI 시장 지배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중국 대표 IT 기업인 바이두, 화웨이 등이 개발한 AI 챗봇은 자국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기에 멀었다는 것이다. 또 캐나다, 영국, 인도, 이스라엘 등 다른 국가 정부와 기업들도 자체 AI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출시한 곳은 없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AI 챗봇을 구동할 수 있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모두 갖춘 국가는 거의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AI 챗봇의 기반이 되는 기초 모델 구축에만 1억~2억 달러(약 1300억~2600억 원)의 비용이 든다.
그러나 네이버나 LG 등 한국 기업들은 특정 산업과 문화, 또는 언어를 목표로 삼은 특화된 AI로 미국과 경쟁하려 한다고 NYT는 강조했다.
최석웅 뉴욕주립대 정보시스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에 현지화 전략은 합리적인 전략”이라면서 “미국 기업들은 범용 AI 툴에 집중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AI 기업들은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네이버의 ‘클로바 X’는 미국산 챗봇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어 관용구와 최신 속어를 인식한다. 또 검색 엔진에 통합돼 사람들이 이 도구를 사용해 편리하게 쇼핑하고 여행할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고 메신저 ‘라인’이 널리 쓰이는 일본도 또 다른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다.
LG는 배터리와 화학물질, 의학용 신소재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등 기업과 연구원을 타깃으로 한 생성형 AI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가우스’를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등에 접목할 계획이다. 카카오는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 일본어와 베트남어, 말레이시아어 사용자를 겨냥한 챗봇을 개발 중이다.
미국을 다른 나라 기업이 얼마나 따라잡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임 교수는 “AI 경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면서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로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