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제33민사부(재판장 허준서 부장판사)는 지난해 폭우로 침수된 도로에서 맨홀에 빠져 숨진 남매의 유가족이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맨홀의 설치·관리상 하자로 인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인다”면서 “서초구는 이 사건 도로 관리청으로서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에 따라 원고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50대 누나와 40대 남동생의 비극은 지난해 8월 8일 강남역 일대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에서 비롯됐다.
그날 저녁 차량을 몰고 강남역 남서쪽에 위치한 서초구 효령로77길 20 앞 왕복 2차로 도로를 지나던 중년 남매는 시동이 꺼져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자 차량 바깥으로 대피했다.
폭우가 잦아든 것으로 판단한 밤 10시 49분경 귀가를 위해 물에 잠긴 도로를 건넜고, 이 과정에서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사망한 것이다. 당시 서초구 일대 누적 강우량은 1250mm를 넘어선 상태였다.
고인이 된 남매 중 누나인 A씨의 배우자와 딸, 남동생인 B씨의 배우자와 아들은 올해 2월 서초구에 맨홀 관리부실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상습적인 물난리를 겪어온 서초구가 맨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10여 년 전인 2011년 7월 홍수 때도 이미 같은 위치에서 하수도 빗물이 맨홀 뚜껑 밖으로 역류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도로는 강남역 남서쪽에 위치한 도로이고 강남역 일대는 낮은 지대와 항아리 지형으로 집중호우 때마다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강남역 일대 도로에 설치된 맨홀은 폭우가 쏟아질 경우 하수도 내부에서 빗물이 역류해 뚜껑이 열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쉽게 열리지 않는 정도로 설치·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초구는 2017년 3월경 강남역 일대 도로의 맨홀 뚜껑을 잠금장치 기능이 부착된 것으로 교체 설치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맞섰지만, 재판부는 충분치 않다고 봤다.
해당 잠금장치가 단순한 도난 방지용인지, 차량 통행에 따른 충격에 맨홀 뚜껑이 이탈되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기능인지, 역류하는 빗물의 수압까지 견딜 수 있는 용도인지 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워낙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졌던 점, 폭우로 이미 맨홀 뚜껑이 이탈한 상황에서 서초구가 즉시 현장에 출동해 조처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 남매가 차량에서 대피하는 등 당시 폭우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서초구의 책임을 8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책정한 배상금액 16억 원은 남매의 장례비, 일실수입(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장래에 얻을 수 있었던 기대수입), 위자료 등을 반영한 것이다.
남매 중 누나 A씨는 사망 당시 만 49세로 65세까지 보통인부로 일했을 경우 약 3억100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봐 이에 대한 80%인 약 2억5000만 원을 일실수입으로 인정했다.
사망 당시 만 46세였던 남동생 B씨의 경우 회계법인에 다니면서 받은 월급 약 1200만 원을 기준으로 만 65세까지 일했을 경우 약 12억30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고 봤고, 이에 대한 80%인 약 9억 9000만 원을 일실수입으로 판단했다.
위자료는 남매에게 각각 1억6000만 원, 이번 소송을 제기한 남매의 각 배우자와 자녀에게 각각 2000만 원으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