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눈이 내리고 난 뒤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빙판길이죠. 거주지가 경사진 곳에 위치했다면 특히나 미끄러짐 사고에 주의해야 하는데요. 아파트 내 공용구역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빙판길 사고에 대해 관리사무소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소재현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와 함께 자세한 내용을 짚어 봤습니다.
Q. 제가 사는 아파트는 언덕 지형입니다. 출근과 통학을 하려면 꼼짝없이 25도 가량의 아파트 내 경사로를 내려가야만 하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큰 눈이 내린 뒤 얼어붙은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면서 엉치뼈를 다쳤습니다. 병원에서는 5주간의 휴식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지난해 겨울에도 가족이 같은 위치에서 미끄러져 타박상을 입은 적이 있어서 더 화가 납니다. 관리사무소에 철저한 제설 작업을 신신당부했지만, 올해 역시 "염화칼슘을 충분히 뿌렸다", "인력을 동원해 최대한 제설작업을 했다"는 대응 뿐입니다. 이들에게 법적인 관리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A. 관련 판례에서는 아파트를 ‘전유부분’과 ‘공용부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입주민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공간이 전유부분, 그 외 공간이 공용부분입니다. 아파트 내 경사로는 후자에 해당하고, 아파트 관리규약에 근거해 관리주체가 유지보수ㆍ안전관리계획 등을 수립할 의무를 지는 공간입니다.
다만 공용부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관리주체가 반드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관리주체가 공용부분 관리에 주의의무를 다했는지”에 따라서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때문에 실제 판례에서는 관리주체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관리주체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경우는 △제설ㆍ제빙 작업에 소홀했거나 △겨울철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주의사항을 안내하는 등의 사고 예방 노력이 미흡한 때입니다.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해도 낙상사고 등으로 발생한 모든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사고가 난 당사자의 부주의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관리주체의 책임은 전체 손해액의 30~40% 정도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례에서는 관리사무소가 제설작업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사로 빙판길 관리에 대한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증거 여부에 따라 관리사무소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Q. 겨울이 오기 전 아파트 단지 내 보도블럭을 덜 미끄러지는 최신형으로 교체하자는 제안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주민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에서도 안건은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아파트 외벽 도색에 비용을 우선 지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였어요. 입대의 역시 언덕 지형에 위치한 우리 아파트에서 겨울철마다 잦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안전 문제보다 외벽 도색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A. 아파트 관리규약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리규약에 공용부분에 대한 관리책임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지도록 하고 있다면, 판례에서는 공용부분의 하자로 발생한 사고에 대한 계약상 책임이 입주자대표회의에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전제가 성립하한다면 사례의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에도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주민의 보도블럭 교체 제안이 있었으며, 언덕 지형에 위치한 아파트로서 겨울철마다 빙판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입주자대표회의 역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외벽 도색에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이유로 안전 관리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Q. 겨울철 구축 아파트 생활은 빨래 문제도 있습니다. 배관이 얼어붙어 물이 역류하는 건데요. 얼마 전 우리 집도 같은 난리를 겪었습니다. 베란다로 거품물이 흘러넘쳐 냉장고와 주방비품이 젖었고 실크벽지까지 손상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관리사무소에서 "동파될 수 있으니 빨래를 하지 말라"고 하루에 세 번씩 방송을 했지만 위층 세대 누군가가 세탁기를 사용한 것 같아요. 윗세대들을 직접 찾아가봤지만 다들 자신들은 아니라며 발뺌하는 상황인데,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걸까요.
아파트의 하수배관은 공용부분입니다. 때문에 하수배관 동파로 역류가 발생하고 입주민에게 이에 따른 손해가 발생했다면 원칙적으로 그 책임은 관리규약상 관리주체(관리사무소 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지게 됩니다.
다만 사례에서처럼 ‘관리사무소에서 동파가 될 수 있으니 세탁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 방송을 하루에 세 번씩 했다면 관리주체로서는 역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윗 세대 중 누군가가 관리주체의 경고방송을 듣고도 세탁기를 돌린 것으로 보이므로, 역류 사고로 인한 주된 손해배상책임은 세탁기를 돌린 해당 윗세대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탁기를 돌린 세대가 누군인지에 대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다면 관련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소재현 변호사
제5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근무하다가 2022년부터는 법무법인(유한) 바른 파트너 변호사(공정거래팀)로 활동 중이다. 주로 공정거래‧금융자문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전면개정된 공정거래법 조문별 판례와 내용’(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