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협의이혼 의사확인기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젊은 부부가 여느 이혼 커플들과 별다를 것 없는 모양새로 앉아 있었습니다. 늘 하던 대로 이혼 의사가 진정한지를 확인하고 나서, 두 사람 사이에 하나 있는 자녀의 양육사항을 심리하고자 물었습니다.
“아이가 4살인데 아빠를 친권자와 양육자로 정하셨네요. 그 이유가 있나요?”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자녀의 복리를 기준으로 친권자와 양육자를 정해야 하니까 아빠 쪽으로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겠죠? 지금 이 자리는 아이의 복리를 위해서 그 내용을 판사가 확인하는 재판기일이고요.”
“그냥 아빠 쪽이 나아서 그렇습니다.”
“원래 아빠가 키워왔나요? 아이가 아빠와 사이가 더 좋은가요?”
“엄마가 키웠긴 한데 형편이 좀 안됩니다.”
“엄마의 면접교섭에 관해서는 둘째, 넷째 주말로 한 달에 2회라고만 쓰셨는데, 4살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뜸한 것 같아요. 현재는 같이 살고 있나요?”
“아니요. 이미 따로 살고 있어요.”
“그러면 엄마가 아이를 마지막 만난 것은 언제인가요?”
“한 두, 세달 정도 되었어요.”
“그렇게나 오래되다니 아이가 엄마를 많이 보고 싶어 하겠네요. 그러면 현재 아이는 아빠가 직접 돌보고 챙겨주고 있나요?”
“그런 것까지 말해야 됩니까?”
“두 분 사이의 양육사항 협의 내용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려면, 양육자로 정한 아빠가 어떻게 아이를 돌보며 키우는지 확인해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말로 하면 압니까?”
“그래도 말로 한번 말씀해 보세요. 협의이혼 의사확인기일이라는 한계 안에서 할 수 밖에 없으니 최대한 잘 알아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다 하지는 않아요.”
“그래요? 양육자가 꼭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육자를 돕는 보조양육자가 있는 경우가 많고요. 혹시 아이 조부모님이 도와주시나요?”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럼 누가 어떤 형태로 도와주시나요?”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요.”
“그럼 현재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사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네”
“그러면 아빠는 아이를 마지막 만난 것이 언제인가요?”
“......”
“아까 엄마가 아이 본지 두, 세달 되었다고 하셨죠?”
“......”
“현재 아이는 누가 어디서 데리고 있는 거죠?”
“애는 잘 있습니다.”
“두 분 중 가장 최근에 아이를 만난 분이 확인한 아이 상태를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
그 이후에 이어진 대화는, 그 젊은 부부가 오늘 꼭 이혼하고 가야 한다며 빨리 이혼의사확인이나 해 달라고 항의하는 말들과, 판사가 이와 같이 자녀의 현 상태조차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 이혼 후 양육사항, 즉 양육자와 친권자, 면접교섭, 양육비에 관한 사항을 정할 수 없으니 이혼의사확인을 어떻게 해 주겠느냐고 그 불가한 이유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하는 말들이 얽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렴풋한 느낌으로는 그 젊은 부부는 아이를 수개월 전에 어딘가에 맡긴 것 같았고 둘 다 두, 세달 이상 아이를 만나지 않거나 혹은 못한 상태로 보였습니다. 경제적 형편 등의 이유가 아닐까 추측이 될 뿐 구체적인 사정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무척 걱정되었으나, 협의이혼 의사확인절차의 확인기일에서는 더 나아간 심리를 할 방법이 없고 단지 ‘확인’ 또는 ‘불확인’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니까요.
이혼을 해야 하는 부부가 적정한 절차를 통해 이혼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울러 그 미성년 자녀 역시 부모의 이혼 과정 및 이혼 후에 제대로 보호받고 친부모(의 협력 관계)에 의해 양육 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이 양자를 조화시킬 절차가 협의이혼에도 마련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법 공백 상태가 존재합니다.
이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사실 십 수 년도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인데 입법자의 관심 부족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역이야말로 국민들의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늘 간과되는 아동의 권리의 보장이 필요한 영역이자, 잊을 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 발생의 토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혼 후 경제적 이유나 그 밖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부모 모두 자녀를 직접 키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모는 이혼도 못한단 말인가. 혹은 사정이 안 되는데 꼭 부모가 직접 자녀를 키우라는 것인가. 이런 말씀을 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당연히 아니지요. 경제적 또는 그 밖의 이유로 부모 모두 자녀를 직접 키우지 못하는 상태로 이혼을 해야 할 경우가 있을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의 이혼에 관한 권리와 자녀의 복리가 조화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민법 및 아동권리협약에 의하여, 미성년 자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자신의 양육 상태나 거취 등이 변화되는 법적 결정이 이루어질 때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신의 복리를 고려 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최우선적으로’ 자녀의 복리가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이혼에 관한 권리가 이에 앞선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만,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도 부모의 이혼에 관한 권리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국가는 그러한 이행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은, ‘재정적, 물질적인 빈곤이나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상황만으로는 아동을 부모로부터 분리하여 대안 양육을 받게 할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가정에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실현할 의무는 국가에게 있습니다.
이는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구체화 한 ‘아동의 대안 양육에 관한 유엔 지침(A/RES/64/142)’ 제15조의 내용으로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를 통하여 국내에서도 법적 규범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동권리협약은 그 전제로 전문에서 ‘아동의 보호와 복지에 관한 사회적, 법적 원칙에 관한 선언(유엔 총회 결의 41/85)’을 상기하고 있는데, 위 선언에는 ‘아동의 첫 번째 우선적 권리는 자신의 부모에 의해 돌봄을 받는 것’이고 ‘아동은 가능한 한 부모의 보호와 책임 아래 성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아동권리협약 제9조에는(물론 우리 민법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만) 부모의 일방 또는 쌍방과 아동이 분리되더라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그 관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니 만일 경제 형편 기타 사유로 자녀를 부모 모두 키울 수 없게 되는 부모가 이혼을 할 때 어떻게 자녀의 복리와 부모의 이혼에 관한 권리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국가가 이러한 부모를 지원하여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럼에도 어쨌든 이혼 과정과 그 후에 일시적으로라도 양 부모 모두 직접 자녀 양육이 어려울 때에, 법원과 부모가 자녀의 복리에 저해됨이 없도록 양육사항을 정하여 이혼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나마 재판상 이혼에서는 법원이 민법, 가사소송법과 가사소송규칙에 따라 당사자 및 관계인을 출석시키거나, 교육과 상담 그 밖의 조정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면서도 부모의 이혼의 권리를 보장하는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합니다. 물론 현재 제도 자체가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고 각급 법원의 인력과 예산 사정상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이 역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담당했던 사건 중에 친부모가 직접 키우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 어떤 식으로 양육사항을 정했는지 그 사례를 소개해 봅니다. 아래 사례는 법원에서 판사가 일방적으로 양육사항을 정한 것이 아니라, 부모 및 실제 양육자에 대한 교육 및 상담, 아이 상담 기타 법원의 조정(調整, adjustment)조치, 이를 기반으로 한 협의 및 조정(調停, mediation)을 통하여 양육사항을 함께 만들어 간 것들입니다.
아래에서 원고는 이혼을 청구한 아내(엄마), 피고는 남편(아빠)이었으며, ‘사건본인’이란 미성년자녀를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실제 양육자를 소송절차상 ‘관계인’ 개념으로 포섭했는데, 아이의 할머니, 즉 피고의 모친이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법원의 개입 전에는 원고가 피고와의 결혼 생활을 못 견디고 집을 나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을 청구했기 때문에 아이와도 수개월 이상 단절되어 있었고, 피고나 관계인은 원고와 감정이 좋지 않아서 아이를 만나게 해 주지 않았습니다. 피고는 관계인 거주지에 주소를 두고는 있었지만 지방을 다니며 일을 하다가 가끔씩만 집에 오는 상황이라 사실 아이의 실질적인 양육자가 아니었습니다만, 원고 역시 원룸에 살면서 적은 소득으로 자신의 생계 유지만도 급급한 상태였기에 아이를 데려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피고가 알콜 등 문제가 다소 있었기에 관계인과의 모자 관계를 고려하더라도 도저히 양육자는 물론 친권자도 적합하지 않았지요. 다행히 관계인이 (원고는 미워했지만) 아이에게는 따뜻한 품성과 사랑으로 잘 양육할 수 있는 분이었기에, 법원의 개입은 관계인과 원고 사이의 관계 개선 및 협력적 양육관계 구축, 원고와 자녀 사이의 관계 회복, 이를 위한 교육 및 상담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이혼 및 양육사항 조정조항으로 정리되었습니다.
2. 사건본인의 친권자를 원고로, 양육자를 관계인으로 각 정한다.
3. 원고와 피고는 사건본인과 아래와 같이 각각 면접교섭을 하고 관계인은 이에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
가. 원고는 매주 주말 1박 2일 사건본인과 면접교섭을 한다.
나. 피고는 평일 중에 정기적으로 집에 들러서 사건본인과 면접교섭을 하여야 한다.
다. 그밖에도 원고와 사건본인이 원하는 경우 서로 만나거나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고, 사정변경 등의 경우에 사건본인의 복리를 기준으로 상호 원만하게 협의하여 진행한다.
4. 원고는 관계인에게 사건본인의 양육비로 월 30만 원씩을 이 조정성립일부터 사건본인의 성년에 이르기까지 매달 말일에 지급한다.
5. 원고와 피고, 관계인은 사건본인의 복리를 위하여 양육사항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상호 원만히 협의하여 조정하기로 한다.
위 사례에서 시어머니인 관계인이 이혼을 요구하는 며느리를 미워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협력적 관계로 돌아섰을까요. 손녀를 사랑한 할머니였기 때문에 교육과 상담 과정에서 아이에게는 엄마가 꼭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환기되자 자신의 부정적 감정 보다는 아이를 위한 필요를 앞세울 수 있었고요. 며느리 입장인 원고로서도 이혼은 해야 하겠고 당분간은 아이를 키울 아무런 대안이 없이 시어머니께 맡길 수밖에 없었기에 시어머니에게 죄송하고 고마워하는 자세로 아이를 부탁하면서, 아이 양육에 필요한 연락을 서로 긴밀하게 하기로 하는 등 친권 행사에 필요한 협조를 하기로 하였지요. 특히 매달 일정한 양육비를 원고가 시어머니에게 직접 드리기로 하고 실제로 시범 지급이 두어 달 이루어지자, 경색된 관계가 많이 풀렸습니다. 역시 면접교섭과 양육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봅니다.
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고, 실제 수많은 가정에서 각기 상이한 다양한 상황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요즘에는 젊은 분들의 자립이 점차 늦어지면서 이혼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그들의 부모 세대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오히려 부모를 배제하거나 부모와 분리시키면 안 될뿐더러, 부모가 어렵다고 마을에만 아이를 맡기고 아이와 관계를 단절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면접교섭은 아이의 친부모로부터의 양육을 받을 권리의 실현이므로 의무자인 부모는 꼭 해야 합니다.
현재 수원지방·가정법원 안산지원에 재직 중이며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면접교섭의 중요성 및 바람직한 방법을 안내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