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은 단계적으로 일어났지만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은 기억되고 전기 발명으로 일어난 2차 산업혁명은 간과된다. 유래를 모르고 사용하는 기기가 진정한 발명품이라며 위안하지만 전기의 원천인 송전선이 하수구 취급받는 현실은 서글프다.
베르사유를 지은 루이 14세는 화장실이 미관을 해친다고 했다. 송전선도 시야를 가리고 경관을 훼손한다. 송전선은 바람이나 고전압에 윙윙거리고 태풍에 끊어질 수 있다. 대도시에는 송배전시설이 지중화되었지만 가공 송전선이 지나는 시골 주민의 피해는 적지 않다. 땅값이 낮아 살펴보면 송전선이 지나간다.
2010년대 밀양 송전선 갈등 이후 송전선 보상기준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동해안 혹은 서해안 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송전선의 건설은 순조롭지 못하다. 한전이 송전선 주변 소유주들과 협상을 벌이지만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는 작년 송전망 건설 촉진 대책을 발표했다.
하수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지금이 송전선을 사회간접자본으로 전환할 시기라는 생각이다. 송전선이 지나는 좁은 지역을 국유화하여 통신선, 송유배관을 함께 매립하고 그 위에 태양광 설비나 산책로로 활용할 수도 있을 듯하다.
혐오시설인 하수도가 우리 삶에 무리 없이 들어왔듯이 혐오 시설인 송전선이 우리 일상으로 돌아 올 수가 없을까? 송전선이 지중화되면 경관의 훼손이나 태풍에 의한 피해는 사라진다. 막대한 비용은 송전선을 점진적으로 확충하면 분산될 수 있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송전선이 유도하는 전자기파에 의한 영향이다.
이제까지 과학계의 잠정 결론은 거시적 관점에서 송전선에 의한 전자기적 영향은 없지만 미시적 관점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으로 인해 판단이 유보되었다. 알다시피 전선에 전류가 흐르면 전선 주변에 전자기장이 형성된다. 전선 주변에 놓인 나침판의 움직임으로 전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 형성된 전자기장만큼 전력손실도 발생한다. 동일한 유형의 전력 소모가 방송국에서 전파송출 안테나에서 일어나고, 핫스폿을 만드는 휴대폰의 배터리에서 일어난다.
이 정도까지 이해하는 독자는 대단한 수준이다. 대학에서 전자기학을 배운 필자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다만 필자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전자기파 송출에 의한 전력 손실을 설명하는 전기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자료를 검색하고 전자기이론으로 숙고하여 얻은 과학적 설명은 송전선이 한 선이 아니라는 데 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2선 이상의 송전선이 지나간다. 발전소에서 집으로 가는 전류는 한 선을 타고, 집에서 발전소로 가는 전류는 다른 선을 탄다. 한 송전선이 송출 안테나처럼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면서 다른 송전선은 발생된 전자기파를 수신 안테나처럼 흡수한다. 서로 주고받으니 전력 손실도 없고 거시적으로 전자파 손실도 없다.
미시적 관점이란 송전선 근처 전자기파 영향이다. 수십 미터 높이의 송전탑 아래에서도 누출된 전자파가 측정된다. 이 세기는 지구 자기장 세기보다 약하고 병원 자기공명영상(MRI) 측정 시 받는 자기장보다 엄청 약하다. 인체 감전을 유발하는 전압에 비해서도 약하지만 송전선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60Hz의 변동성을 지녀 정적인 전자기파와 조금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60Hz의 극저주파는 도체의 전자를 틀림없이 이동시킨다. 체액 속의 나트륨 이온이나 금속 인공 장기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극저주파는 라디오파나 가시광선처럼 몸속 생체 분자를 활성화시킬 수는 없다.
불확실한 미시적 영향을 피하는 방법은 이격거리를 설정하는 것이다. 전자기파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거리에 따른 감소효과가 좋다. 송전선에 피복을 입혀 전선을 꼬는 방법도 있다. 두 전선 사이의 간격이 좁을수록 전자파 누출은 적다. 고추 말리는 지방공항을 짓느라 국비를 낭비하지 않으면 하수구처럼 ‘미운 송전선’도 사회간접자본으로 관리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