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중 38%는 공직사회가 부패했다고 인식하고, 56%는 우리 사회가 부패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2023년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가 이렇다. 조사는 일반 국민(1400명), 기업인(700명), 전문가(630명), 외국인(400명), 공무원(1400명) 등 5개 그룹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부패 인식도의 절대치가 높은 것도 걸리지만 전년도 조사보다 나아진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은 더 씁쓸하다. 국민, 전문가, 기업인 그룹에서 부패 응답률이 2~3%포인트(p) 상승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심각한 분야는 정치권이다. 국민과 기업인, 전문가가 가장 부패한 곳으로 정당·입법 분야를 꼽았다. 특히 국민 10명 중 7명이 정치권을 비리의 온상으로 본다. 아니 땐 굴뚝의 연기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자승자박이다.
임기 막바지에 접어든 21대 국회만 하더라도 기부금을 횡령하거나 토지거래 허가 구역 내 땅을 불법으로 샀다가 들통나는 등 불명예 전당에 영원히 남을 사례가 수두룩하다. 법이 그은 선을 넘어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국회의원도 한둘 아니다. 지인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써준 사실로 유죄가 확정된 경우도 있다. 국회 회의장에서 코인 거래를 일삼은 사례도 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는 기본이다. 국민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정치권은 더욱이 국민 눈총을 사는 일부 현역에게 차기를 노릴 기회까지 주고 있다. 정치 혐오증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대한민국 정당과 정치인은 과분할 정도의 후한 대우를 받고 있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매년 국고 보조금을 받는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지급된 보조금은 약 1420억 원이다. 올해도 4월 총선이 있는 만큼 평년의 곱절로 혈세를 챙기게 된다. 국회의원들은 매년 억대 후원금을 끌어모을 수도 있다. 국가와 국민이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은 정치 부패가 없어야 국가와 민생을 중시하는 올바른 정치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열차는 역주행만 하기 일쑤다. 이런 배신이 없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연간 세비와 수당만 1억5000만 원 이상 챙긴다. 국민소득 대비 세비 수령액은 OECD 3위 수준이다. ‘가성비’는 형편없다. 의회 효과성 평가를 보면 훨씬 낮은 세비에 만족하는 북유럽 의회는 최고 수준 점수를 받지만 우리는 꼴찌에서 두 번째다. 게다가 부패 인식도마저 바닥을 긴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국회 동의가 없으면 체포를 피할 수 있다. 불체포특권이다. 거짓말을 해도 면책특권 뒤에 숨는다. 헌법과 법률이 각종 특권을 보장한 것은 공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정당과 의원들은 사리사욕을 앞세워 공익을 짓밟고 헌법과 법률을 희화화하고 있다. 5000만 국민이 이를 제 손금처럼 환히 들여다보기에 ‘가장 부패한 집단’이란 낙인을 찍는 것이다. 국민은 하늘이다. 정치권은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