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부 부장대우
G2 무역분쟁 이후 우회 수출 증가
명분과 함께 실리 챙기는 외교 절실
최근 동유럽을 향한 완성차 수출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우선 차 수출이 늘어났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요.
실제로 2020년 6171대에 불과했던 카자흐스탄 수출은 지난해 2만6467대로 3.3배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키르기스스탄 수출은 무려 11배나 급증했지요. 수출 대수는 많지 않지만, 수출 증가율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국가로 자동차 수출이 급증한 시기는 2021년부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직후, 그러니까 러시아 생산과 수출이 사실상 중단된 때부터이지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모두 공용어 가운데 하나로 러시아어를 쓸 만큼, 러시아와 깊은 관계를 맺어온 우방 중의 우방입니다.
전부는 아닐 테지만, 러시아 우방국으로 자동차와 관련 부품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건 자동차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들 나라를 거쳐 러시아로 자동차가 수출되고 있다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해집니다.
이유는 지난 몇 년 사이 글로벌 무역 시장이 반 토막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편과 너희 편을 가르다 보니 불거진 일입니다. 물건을 사올, 그리고 팔 수 있는 나라가 줄어들다 보니 가격도 올라갔습니다.
예컨대 바로 옆 나라에서 값싸게 구했던 리튬을 저 멀리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구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물류비용도 비싸지는 셈이지요.
패권을 틀어쥔 국가끼리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냉전 시대가 시작됐고, 동유럽과 중동에서는 전쟁마저 일어났습니다.
신냉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주요 국가는 수출 통제를 무기로 내세웠으나 어디에도 구멍은 있기 마련입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비웃으며 자국 원유 수출 대부분을 중국으로 돌렸습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된 이후 러시아 원유의 91%는 중국과 인도로 수출되고 있기도 합니다. 45% 수준이었던 유럽향 수출은 4∼5%로 급감하기도 했지요.
우리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중국 주요기업은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하자 한국을 우회 통로로 삼고 미국 수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 제한을 강화했습니다. 국제협력 이행 차원에서 전략물자 수출 통제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인데요. 정부의 수출 제한 정책을 위반했을 경우 행정처분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작 무역업계에서는 이런 수출제한에 대해 얼마만큼 실효성을 지닐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풍선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풍선을 쥐어짜듯, 러시아를 향한 자동차 수출길을 틀어막으니 주변국으로 수출이 확대되는 상황이지요.
이쯤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쫓아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부럽기도 합니다. 푸틴을 만난 무디 총리는 “당장 전쟁을 중단하라”며 따끔하게 충고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뒤에서는 가격 상한제에 묶인 러시아 원유를 값싸게 대규모로 들여오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인도의 외교, 그들의 무역 전략이 부러웠던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저 국제사회에서 “명분만 챙기면 된다”는 식의 수출 통제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우리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할 뿐 아니라 오히려 무역 상대국과 장벽만 세우는 꼴이니까요. 명분과 함께 실리를 챙길 방법이 절실한 때입니다.
정책 당국자가 “방법이 있겠느냐”고 되묻는다면 당신은 그 자리를 틀어쥐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 방법을 찾아내라고 주어진 자리가 바로 당신이 앉아있는 그곳이니까요.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