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지인이 스위스 헬스클럽에 갔다가 놀라워했던 경험을 들은 적도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 한국에서는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한 곳을 찾더라도, 장애인이 헬스클럽을 이용하려면 수모를 당하기 일쑤다. 안전을 이유로 등록을 거부하거나 마지못해 각서를 쓰게 하는 식이다.
WHO(세계보건기구) 헌장에는 ‘건강’을 단순히 병약함이 없는 개인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웰빙을 누리는 상태로 규정한다. ‘사회적 웰빙’이란 건강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있어야 함을 암시한다. 장애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장애인의 경우 생활체육 접근이 제한될수록 의료비를 비롯한 사회적 비용이 더 지출될 수밖에 없다.
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2015년 제정된 장애인건강권법에는 공공체육시설에서의 장애인 체육만 규정했고 강제성이 없어 민간시설을 포함한 실제 생활체육에 장애인들이 참여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런 현실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같은 OECD 국가인 독일은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체육시설 숫자가 인구 1710명당 1개꼴로 한국의 29배다.
한국은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 현황’(2022년)에 따르면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은 장애인 3만8260명당 1개꼴이다. ‘전용’체육관이 아닌 이용 가능한 장애-비장애인 공용 체육시설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
기본 인프라인 운동 장소가 이 정도니 또다른 요소인 인력 부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장애인도 동네 헬스장에 갈 수 있다는 인식에도 악영향을 주고 장애인의 야외 활동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작년 경기도에서 시작한 장애인 기회소득은 흥미로운 실험이다. 장애인들에게 활동을 측정하는 스마트워치를 주고 일정 시간 활동하면 문화, 체육시설에서 사용 가능한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몸을 움직이면 결국 의료비나 돌봄비용 등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는 취지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의의는 장애인 활동을 촉진시킨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기회소득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했을 때 이 제도가 결국은 장애인들의 각종 문화-생활체육 접근 욕구 증가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지방정부만 이런 노력을 하는 건 아니다. 문화체육부에서 제공하는 ‘장애인스포츠강좌이용권’이란 제도가 있다. 매년 낮은 이용률이 문제가 되는데, 이용률이 낮은 큰 이유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마침 이런 장애인 생활체육 욕구를 비즈니스로 돌파하려는 창업가들이 생기고 있다는 건 고무적이다.
이민구 고려대 의대 교수가 설립한 사회적기업 ‘좋은운동장’은 생활체육으로부터 출발한 장애인 육상선수를 육성한다. 이번 CES 2024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캥스터스’는 휠체어 이용자용 트레드밀을 개발해 보급한다. 장애인 필라테스를 제공하는 ‘디아필라테스’는 아예 협동조합을 만들어 배리어프리 필라테스 강사를 육성하고 있다.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는 ‘어댑핏’이란 장애인 운동 스튜디오를 만들어 서울과 부산에서 운영 중이다. 특히 ‘캥스터스’의 트레드밀은 해외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장애인스포츠강좌 이용률이 낮다고 해서 장애인 생활체육 시장이 없는 게 아니다. 적절한 공적 지원을 통해 가격-물리적 접근성이 뒷받침된다면 비즈니스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물론 ‘움직임 증진’을 통한 사회적 가치는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