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에 출전했던 수많은 대표팀 중 가장 베스트라고 불리던 축구 국가대표팀이었습니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황희찬(울버햄튼). 이름만 들어도 빛나는 축구 스타들이 포진한 팀이었죠.
하지만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불안감을 말이죠. 어찌 보면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스타들이 멱살을 잡고 끌고 온 것과 다름없었죠.
그 멱살잡이 좀비 축구도 결국 힘을 잃었는데요. 준결승이란 자리까지 꾸역꾸역 밀고 올라온 선수들의 투지와 희생에 그저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팀을 꾸리고도 이 결과를 낸 책임은 분명히 따져봐야겠죠. 가장 먼저, 우승을 자신했던 축구팀의 수장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게 말입니다.
1승 2무,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오른 한국은 원래 예상과는 반대편에서 시작했는데요. 16강 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였죠. 정말 힘든 경기였습니다. 선제골을 내주고 계속 끌려다녔죠. 답답함에 답답함이 더해지며 축구팬들은 잠을 포기하고 경기 시청을 택한 자신을 원망할 뿐이었는데요.
진짜 기적이 일어났죠. 후반 추가 시간의 추가 시간,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조규성의 헤딩 극장골이 터졌습니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골키퍼 조현우의 눈부신 선방에 힘입어 8강을 따냈죠.
8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주와의 승부도 연장전까지 이어졌죠. 연장전으로 이어지는 과정들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선제골을 내주고 고전하다 후반 추가시간 캡틴 손흥민의 영리한 플레이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는데요. 덕분에 기사회생한 한국은 연장전 손흥민의 그림 같은 프리킥 성공으로 4강행 티켓을 따냈죠.
후반 추가시간의 추가시간, 겨우겨우 따낸 동점골과 역전골. 120을 넘어서는 한국팀의 플레이가 이어지며 ‘좀비 축구’라는 이름까지 붙었습니다. 최고의 팀과는 너무도 안 어울리는 네이밍이었죠. 하지만 이 좀비 축구의 수명도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과연 이 팀이 준결승까지 올라온 팀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경기였죠. 이 정도면 한국에 패해 짐을 싼 사우디아라비아와 호주가 분노할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조별리그부터 이어진 수비 불안은 김민재가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자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는데요. 역습엔 무조건 뚫리고, 상대 공격수 앞에 배달하는 치명적인 패스 미스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2대 0으로 끝난 것이 다행일 지경이었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김민재가 그간 얼마나 많은 역할을 수행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홀로 외로웠던 조현우는 얼굴로 상대의 슛을 막아내는 등 호수비를 펼쳤음에도 결국 2골을 내주고 말았죠.
공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르단을 상대로 이번엔 유효슈팅 한 번 기록하지 못하고 체면을 구겼죠. 중원은 한국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지켜보는 팬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는데요. 전반 내내 벌어졌던 수비 불안에도 선수 교체 없이 후반을 시작한 클린스만의 전술에 속이 터졌죠. 전술 없는 축구라는 건 알았지만, 교체 시점까지 그 어떤 계획도 없어 보였습니다.
졸전 후 손흥민은 취재진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며 5번이나 죄송하다고 말했는데요.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아시안컵을 위해 뛰어다녔는지 아는 팬들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캡틴도 선수들도 눈물을 글썽이고 고개를 숙인 결과에 홀로 고개를 든 이가 바로 클린스만이었는데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사퇴 언급을 단칼에 거절했죠.
취재진의 ‘해임 이야기가 나올 텐데 감독직을 계속 수행하느냐’는 질문에 “난 어떤 조치도 생각하고 있는 게 없다”라고 잘라 말했는데요. 이어 “팀과 한국으로 돌아가 이번 대회를 분석하고, 대한축구협회와 어떤 게 좋았고, 좋지 않았는지를 논의해보려 한다”라고 사퇴 의사를 일축했죠.
그러면서 아시안컵 우승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그가 생각한 책임은 월드컵을 위한 준비였나 봅니다. 클린스만은 “2년 반 동안 북중미 월드컵을 목표로 팀이 더 발전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예선도 치러야 한다”라며 “우리 앞에 쌓인 과제가 많다”라고 당연한 듯 월드컵 지휘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이의 시선은 그저 물음표투성이죠. 외신 또한 클린스만호의 졸전에 뼈 때리는 기사들을 쏟아냈는데요. 미국 매체 디애슬레틱은 “뛰어난 스타 플레이어들이 만들어낸 천재적인 상황에 의존했지만, 클린스만의 일관적인 준술 계획은 부족해 보였다”라며 “아주 형편없는 경기였다”라고 평했죠. AP통신 또한 “클린스만의 전술은 의문의 연속이었다”라며 “손흥민을 비롯한 뛰어난 선수들로 꾸려진 대표팀은 더 많은 것을 해냈어야 했다”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미국에서 재택으로 한국팀을 관리(?)하던 클린스만은 한국으로 귀국한다고도 밝혔는데요. 과연 한국으로 와도 당당히 얘기할지 의문이 듭니다. 한국 팬들의 분노가 정말 만만치 않거든요.
축구팬 방송인 이경규는 7일 아나운서 김환, 코미디언 정찬민과 아시안컵 준결승전을 관람하며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는데요. 경기를 관람하던 중 한국 대표팀의 패배가 확정되자 이경규는 “축구협회장이 누구야. 책임지고 물러나야지, 이렇게 만들어 놨으면”이라며 클린스만 감독을 고집한 축구협회 측에 돌직구를 날렸죠. 팬들 또한 이경규의 발언에 동조했습니다.
그간 계속돼왔던 대한축구협회의 헛발질이 클린스만으로 점철된 모양새인데요. 앞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바 있습니다.
선임 과정도 ‘패싱’ 논란이 일었는데요. 선임과정에서 응당 진행해야 했던 검증 과정이 날아갔죠. K리그 전·현직 감독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뒤늦게 선임 통보만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는데요. 비난이 계속되자 마이클 뮐러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감독 선임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설명에 나섰지만, 의문점을 해소하진 못했습니다.
팬들과 전문가들은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을 선임할 당시 수백 편의 경기 영상과 자료를 분석하며 모든 것을 공유했던 때와 대비된다며 축구협회의 행정에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이 모든 어긋난 과정이 하나하나 쌓이며 만들어 낸 아시안컵 준결승이었는데요. 클린스만 감독 선임부터 이어진 한국 축구의 1년은 한국 축구, 대한축구협회, 클린스만 모두의 실패였습니다. 이제는 그 엉기성기 얹어진 돌들을 걷어내고 다시 차례로 쌓일 차례인데요. 2년여밖에 남지 않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이와 같은 실패를 겪어선 안 되겠죠.
그 첫 돌은 바로 ‘책임’이 돼야 할 텐데요. 축구협회도 클린스만도 더는 이를 외면할 순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