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국 매체가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대표팀 선수들 간 다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돼 그가 테이프를 감은 채 요르단과의 4강전에 나섰다고 보도한 겁니다.
앞서 클린스만호는 대회 기간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선수들끼리 그라운드 뒤에서 불협화음을 빚었던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팬들은 “그런 팀워크로 4강까지 올라간 게 용하다”며 혀를 차고 있는데요.
문제는 선수를 보호해야 할 축구협회가 이런 논란을 부추기면서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안 그래도 클린스만 감독과 그를 선임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 축구협회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 태극전사들이 원팀은커녕 사분오열 상태였다는 주장까지 등장하면서 국민의 실망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영국 매체 더선은 14일(한국 시간) “한국이 요르단과 4강전을 앞둔 전날 이강인 등 젊은 선수 일부가 식사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탁구를 즐기기 위해 자리를 뜨려고 했다”며 “하지만 대표팀의 결속을 중요시한 주장 손흥민은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흥민은 이강인 등 자신에게 무례한 말을 한 어린 선수들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이에 선수들이 반발하면서 베테랑 선수들과 다툼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일종의 불화설이었지만, 보도 이후 반응은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습니다. 매체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루머를 전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황색 언론이기 때문이었죠. 국내 축구 팬들은 손흥민이 요르단전에서 이강인을 격려해주는 모습 등 훈훈한 장면들을 온라인상에 게재하며 불화설을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가 ‘직접’ 나서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회 기간 선수들이 다툼을 벌였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일부 어린 선수들이 탁구를 치러 가려는 과정에서 손흥민과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을 다쳤다”고 ‘친절히’ 설명해주며 갈등을 인정했는데요. 이후 각종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가 쏟아져 나오면서 불화설엔 살이 붙었죠. 가디언, 키커, 디 애슬레틱, 텔레그래프 등 주요 외신들도 일제히 “한국 선수들 간 다툼 중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소식을 타전하고 나섰습니다.
외신과 축구협회 등을 종합해보면, 이강인과 손흥민 등 선수들 사이 충돌이 있었던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강인이 이날 오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그는 “제가 앞장서서 형들 말을 잘 따랐어야 했는데, 축구 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스러울 뿐”이라며 “제게 실망하셨을 많은 분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만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한 누리꾼은 댓글로 “토트넘 선수들이 주장으로서 손흥민을 존중해 주고 따라주는 게 그들이 부족하고 모자라서일까. 탁구하면서 하하호호 할 거면 지고도 웃는 클린스만이랑 뭐가 다르냐”고 지적했는데요. 이 댓글엔 ‘좋아요’가 1만6000개 넘게 찍혔습니다.
일각에서는 클린스만 감독이나 축구협회 측이 비난 여론을 돌리기 위해 선수들의 갈등을 영국 언론에 흘린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되는 등,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분열이 포착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선수단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졌다는 주장인데요. 손흥민을 비롯해 김진수, 김태환(이상 전북), 김영권(울산), 이재성(마인츠) 등 고참급 선수들, 황희찬(울버햄프턴), 황인범(즈베즈다), 김민재 등 1996년생 중심 그룹, 이강인을 비롯해 설영우(울산), 정우영(VfB 슈투트가르트), 오현규(셀틱) 등이 모인 젊은 선수들 그룹으로 구분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들은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실시되는 론도(5대2 패스) 훈련이나 스텝 훈련 때도 본인의 그룹끼리 호흡을 맞췄다는 전언인데요. 휴식 날 숙소 외부 식당을 이용하는 등 훈련이 아닌 시간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선수단은 해외파끼리, 또 국내파끼리 나뉜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이미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조별리그 2차전이 끝난 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등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는데요. 일부 선수들의 개인행동에 팀워크가 약화할 수 있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었지만, 클린스만 감독이나 축구협회의 제지는 없었죠.
여기에 아시안컵 기간 훈련장에서 한 유럽파 선수가 국내파 선수와 강한 몸싸움을 벌이더니, 신경질을 내고 공을 강하게 차며 화풀이하는 장면도 취재진에게 포착됐습니다. 이같은 모습이 아시안컵 마무리 이후 재조명되면서 하나와는 거리가 멀었던 팀이라는 재평가가 나왔습니다.
선수들 사이 갈등과는 별개로, 현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축구협회라는 비판이 높습니다. 선수단 내부 충돌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방치했고, 오히려 언론에 재빠르게 인정해버리면서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덕목을 저버렸다는 지적이죠.
특히 아시안컵을 마친 손흥민이 인스타그램에 “제가 주장으로서 부족했고 팀을 잘 이끌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많은 사랑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대한민국 축구 선수임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책임감 없는 모습이라는 비판이 잇따릅니다.
클린스만 감독에겐 ‘최악의 감독’이라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선임 당시부터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자질 논란이 일었는데요. 감독직 사퇴를 팀과 논의도 없이 SNS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등 수차례 기행으로 국제무대에서 이미 평가가 끝났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죠. 실로 클린스만호는 무색무취 전술, 해줘 축구 등 조롱 섞인 비판을 받기 일쑤였고,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도 진작 물거품이 됐습니다.
클린스만 선임을 결정한 정몽규 축구협회장에 대해서도 날 선 반응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영국 매체 디 애슬레틱의 토트넘 전담 기자 팀 스피어스도 클린스만 감독 체제 이후 1년 동안 한국이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면서 “정 회장은 위상을 높이기 위해 축구계 거물 영입에만 열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도 파울루 벤투 감독의 후임자를 물색할 때부터 적합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죠.
박문성 축구해설위원은 1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 회장은 물론이고 축구협회 임원진 전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는 말에 “적절한 지적”이라며 “훨씬 더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 게 먼저였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13일 열린 임원회의에 아쉬움을 표한 겁니다.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축구협회는 1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국가대표 전략강화위원회를 열고 아시안컵 리뷰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여부를 논의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아시안컵 전술이 부족했으며 선수단 내부 갈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 선수 발굴과 팀 규율 제시의 부재 등 지적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축구협회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감독 교체로 의견을 모았다는 전언인데요.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이날 회의 내용을 협회에 보고하겠다”고 부연했습니다.
사실상 가장 관심이 높은 화두인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는 정 회장의 판단으로 결정될 전망입니다.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최종 발표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