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사수 투쟁 나선 의료계…선거철이라는 허튼 기대 말아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
꼭 10년 전 꽃이 흐드러지던 날, 그저 악몽을 꾼 것이라 믿고 싶었던 참사가 있었다. 세월호 선장 이 모와 승무원들은 300명이 넘는 생명을 희생시키고 자신들의 목숨만 구했다. 그들은 살인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그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다. 피해자의 사망 등의 결과를 방지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피해를 막기위해 필요한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살인과 동일한 결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검찰은 승객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승객들의 죽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고의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그들을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고 했다. 1년 6개월 걸친 재판 끝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만장일치로 이 선장의 살인죄와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참사의 주어를 의사로, 목적어를 환자로 바꿔보자. 의사들은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둔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천룡인’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주로 젊은층이 누군가를 성역화 할 때 쓰는 단어다.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하는 종족으로, 인간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고 하등생물처럼 대한다. 천룡인은 자신들이 법위에 군림하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우월한 ‘다른’ 존재인 그들은 누군가 원한다고 해서 천룡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태어나야만 한다고 믿는다.
요즘 2030들은 의료인을 천룡인이라고 부른다. 부러움이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 일까. ‘원피스’를 끝까지 읽은 그들은 천룡인의 최후도 알고 있다. 스포 방지 차원에서 중간에 등장하는 장면만 하나 흘린다. 여느 때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항구도시에서 귀족의 삶을 즐기던 한 무리의 천룡인들은 어느 날 하층민으로 구성된 해적단의 습격을 받는다. 감히 노비계급이 자신들에게 집단으로 대항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은 원피스의 세계관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커져간다.
뜬구름 같은 소리 그만하고 밥그릇 침범사태에 멘탈이 나간듯 한 의료인들을 위해 현실로 돌아와 보자.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열어 의료인들에게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했다. 강하고 직설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평소와 다른 화법을 썼다. 총선이 코 앞이라며 허튼 기대감에 부풀었다면 이날은 윤 대통령이 ‘좋은 말로 할 때’일 뿐이라는 점을 꼭 알았으면 한다. 산더미 같은 의학서적 읽느라 정무감각 따위 기를 시간이 없었다면 딱 하나만 기억해두길 바란다. 정부가 3개월 전 전격 시행한 의료법 제8조는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담았다.
갑자기 등이 서늘해진다면 녹색창에 세부내용을 직접 찾아보시고, 정치 현실에 관해 마지막 한가지만 더 알려드린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의사들의 꿀단지이자 건보재정 파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의료개혁을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속 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아직도 모르겠다면 한 줄 요약. 당신들은 벼랑 끝, 한 걸음의 뒷공간도 남지 않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