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문제는 20여 년 전에도 주요 의제였다. LG경영연구원의 2001년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우량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OECD 우량기업에 비해 65%, 아시아와 미국 대비해선 57%, 70%씩 낮게 평가받았다. 전문가들은 해묵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열쇠는 결국 기업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PBR을 높이기 위해선 기업이 가지고 있는 유휴자산, 유·무형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고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며 “경영합리화, 경용효율화를 위한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어떻게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것인가다. 저PBR 열풍으로 시현된 상승세가 지속되기 위해선 기업 경쟁력 강화와 수출 다변화를 통한 실적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교수는 “기업의 실적은 주가와 연관돼 있으므로 당연히 기업의 실적이 높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시장에서는 주주환원에 포커스가 맞춰져 이들 기업의 주가가 오르고 있지만, 일본은 실질적인 기업 이익이 성장할 수 있도록 구조적 개혁이 주를 이뤘다”며 “국내 기업이 구조를 개혁하고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나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효율적인 자산배분을 유도할 수 있는 건 장기 업황 성장성이다. 닛케이지수가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며 버블 경제 실절을 넘어선 일본은 외국인 방문객이 5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며 내수 진작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국내총생산(GDP) 항목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 부문은 연초 이후 전망치가 상향조정 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에 수출하는 절대적 규모는 2008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화 약세에도 외국인 방문객 수가 감소하고 있고, 전체 수출 중 G2가 차지하는 비중은 38%를 기록, 연말 이후 일본(40%)보다 낮아졌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은 지난해 5월 기업 밸류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2012년 아베노믹스를 통해서 기업의 체질 개선에 대한 방향을 준 것”이라며 “파격적인 양적완화로 엔저를 유발하고 엔저를 통해 기업수익을 증가시키는 패러다임을 10년 전에 이야기했고, 그것을 통해 점점 바꿔온 다음에 밸류업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실적 개선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규제 개선과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이 돈을 벌게하는 생산성 있는 곳으로의 자본 이동을 유도해야 한다”며 “투자세액공제, 법인세 감면·인하, 새로운 시장 개척에 대한 보조금, 연구·개발(R&D) 세제혜택 등 여러가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 팀장은 “기업들에 부과되는 세금이 높아지면 지배주주는 주가가 올라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며 “기업 유인책으로 세제혜택을 동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고 떠나는 ‘세금 망명’을 하면 한국경제는 절대 잘 될 수 없다”며 “고용을 통해 근로소득세가 늘고 기업 매출과 이익이 확장해 법인세가 늘어나는 효과가 증여세나 상속세가 빠지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크다”라고 덧붙였다.
세무조사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통상 3~5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세무조사를 받기 위해 기업은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일종의 등급제처럼 법과 잘 지키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분별해 세무조사 완화를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기업 밸류업이 성공하기 위해 벤치마킹 대상인 일본의 장점은 따라가되 한국 상황에 맞는 형태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지키지 않으면 상장폐지까지도 검토하겠다는 패널티 방식을 적용했지만, 우리는 인센티브를 폭넓게 구현하는 방법으로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식 교수는 “일본 정부가 반도체 기업 등과 협력해 경쟁력을 높인 사례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 다만, 관료주의나 늦어지는 디지털화는 지양해야 할 요소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