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열흘도 안 돼서 떠난 사람, 머스크

입력 2024-02-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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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세금·규제 피한 기업 엑소더스 흔해
델라웨어주 법원 판결의 후폭풍
‘최악의 법인·상속세’ 한국에 경종

버락 오바마의 일화다.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카리브해 케이맨 제도의 수도에 있는 5층 건물 ‘어글랜드(Ugland) 하우스’를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거나 가장 큰 세금 사기 본거지”라고 쏘아붙인 것이다. 이유가 있다. 어글랜드 하우스는 볼품없는 건물이지만 본사 주소를 둔 기업은 1만2000개에 달했다. 케이맨 제도의 ‘조세 회피처’ 전략이 빚은 마술이다. 다들 세금을 안 내거나 덜 내기 위해 몰려들었다. 물론 서류상 ‘밀집’이다.

문제는 반격이 더 따끔했다는 점이다. 케이맨 제도의 금융서비스국장은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노스오렌지 1209번지 건물에 28만 5000개의 회사가 입주해 있다”고 응수했다. 오바마의 판정패였다. 세금 걱정을 확 덜어줘서 본사 등록에 따른 유무형의 부수입을 챙긴다는 ‘영업 비결’은 알고 보니 다 비슷했다. 입주기업 수는 또 뭔가.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에 짖은 꼴 아닌가.

델라웨어주가 또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이번엔 조세 특구로서가 아니다. 정반대에 가깝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본사 주소를 텍사스주로 옮겼다. 델라웨어주 법원이 지난달 30일 내놓은 판결에 심기가 뒤틀린 탓이다. 법원은 테슬라 이사회가 2018년 스톡옵션 보상 패키지를 승인한 것을 부적절하다고 봤다. 여론이 그 얼마나 공감하든 가만히 있을 머스크가 아니다. 머스크가 토해낼지도 모를 스톡옵션이 약 74조 원 규모라지 않나. 스페이스X 주소를 옮겼고, 14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로 널리 알렸다. 공개 복수전이다.

스페이스X 이전은 판결 보름 만이다. 하지만 보복 개시 시점을 잡자면 ‘열흘도 안 돼서’라고 해야 한다. 머스크가 2016년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의 법인 주소는 앞서 8일 네바다주로 이전됐다. 전광석화 같은 반응 속도다. 뉴럴링크는 인간 뇌에 칩을 이식해 지난달 29일 세계적 조명을 받았다. 델라웨어주는 미래의 월척을 놓쳤다. 그뿐인가. 머스크는 “당신의 회사가 델라웨어에 등록돼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주로 옮길 것을 추천한다”는 여론전도 병행하고 있다. 여간 시끄럽지 않다.

교훈이 없을 수 없다. 기업은 그물에 잡힌 물고기가 아니라는 점부터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기업 또는 자산가는 재산·경영권과 관련되는 제도를 정밀 비교하게 마련이다. 때론 ‘국적 쇼핑’도 불사한다. ‘발로 하는 투표’(voting with the feet)다. 기업 친화적 제도를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지역이 전에 없이 많다는 사실도 유념할 일이다. 델라웨어주가 비교 우위를 누린 것은 옛날이다. 머스크가 택한 텍사스주만 해도 법인세, 개인 소득세가 모두 0%다. 델라웨어주의 혜택이 아까워 눈물 흘릴 일이 없다. 왜 이전을 망설이겠나.

개성 강한 머스크만이 아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지난해 워싱턴주 시애틀 생활을 청산하고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사했다. 이로써 최대 8000억 원대의 세금을 절약했다. 아마존 지분 매각분에 대해 세금 낼 일이 없어져서다. 세계 2위 석유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도 있다. 지금은 영국 기업으로 분류되지만 원래 본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했다. 세금과 규제를 피해 국적을 바꾼 사례다. 유사 사례가 널려 있다. 단행본이 아니라 전집을 내도 될 정도다.

우리 제도는 어떤가. 기업 친화적인가. 더 늦기 전에 객관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어제 ‘밸류업’ 청사진을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최고의 투자환경’을 약속한 일도 있다. 제법 고무적이다. 하지만 법인세만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 부담률은 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 1.4배, 주요 7개국(G7) 1.8배다. 세계 최악 수준인 상속·증여세는 또 어떤가.

성난 야수를 막대기로 찌르는 꼴이란 비유가 있다. 지구 온난화에 둔감한 현대 사회를 꾸짖는 기후과학자 윌리스 브뢰커의 준엄한 경고다. 우리 사회 내부의 반시장 기류도 같은 경고를 받아야 마땅하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이 해외 직접투자에 나선 지 이미 오래다. ‘발로 하는 투표’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나. 막대기로 찌른 적 없다고 우길 수 있나. 열흘도 안 돼서 떠날 사람이 우리 곁에 없는지, 밝은 눈으로 살필 일이다. 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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