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선 축구협회 비판도 ‘탁구 게이트’ 이강인 선발도 관심
그런 한국 축구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위르겐 클린스만 사태, ‘탁구 게이트’,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까지. 최근 대한민국 축구계가 바람 잘 날 없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2023 카타르 아시안컵을 지휘하는 과정에서 무전술 논란과 근태 문제로 잡음을 일으켰다. 대표팀 차기 주장감으로 평가받던 이강인은 아시안컵 대회 도중 ‘주장’ 손흥민과 마찰을 일으키며 많은 축구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한국 축구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2014년과 2018년 월드컵 조별 예선 탈락과 감독 선임 문제. 상대 팀에 대한 전술 대비와 조직력 붕괴. 세대교체 실패와 굴욕적인 귀국까지. 그럼에도 한국 축구는 위기 속에서 언제나 답을 찾아왔다. 이번에도 그렇다. ‘무능력’ 논란을 빚은 클린스만 전 감독은 경질됐고, ‘탁구 게이트’는 이강인의 사과와 손흥민의 대범한 용서로 끝자락을 맺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큰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새 A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7일 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황선홍 감독을 선임하며 급한 불을 잠재웠다. 다만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정식 감독을 선임한 것은 아니다. 협회는 임시 감독을 세워두고, 이후 5월에 정식 감독 선임을 예고했다.
문제는 황 감독이 현재 U-23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겸업 사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황 감독은 4월에 2024 파리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있다. 황 감독은 정식 감독이 선임되기 전까지 U-23 대표팀과 A대표팀을 동시에 이끌어야 한다. 여기에 대표팀 내홍의 중심에 섰던 이강인과 손흥민을 동시 발탁하느냐는 문제도 얽혀 있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전력강화위)는 27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제3차 회의를 마친 뒤 “23세 이하(U-23) 올림픽 축구대표팀 황선홍 감독을 A팀 임시 감독으로 선임한다”며 “6월에 있을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5월 초까지는 정식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다”고 발표했다.
전력강화위 회의는 이날까지 총 3차례가 열렸다. 앞서 21일 1차 회의에서는 ‘정식 감독’ 선임에 무게가 쏠렸다. 하지만 24일 2차 회의에서 ‘임시 감독’으로 뒤집혔다. 정해성 위원장은 “1차 회의에서는 임시 감독이나 정식 감독이냐에 대한 회의였다. 장기적 측면에서 대표팀 재정비가 절실하기 때문에 정식 감독에 무게가 쏠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차 회의부터 임시 감독 체제로 의견이 모였다. 후보군을 검토하던 중 A매치 두 경기를 위해 K리그 현직 감독을 선임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고, 외국인 지도자 역시 시간을 생각했을 때 맞지 않았다”며 “KFA 소속이거나 경험이 많지 않지만 현재 팀을 맡지 않고 있는 지도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자리에서 후보가 3명으로 압축됐고, 1순위가 황선홍 감독이었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25일 황 감독에게 임시 감독직을 제안했고, 황 감독이 26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황 감독은 선수 시절 한국의 ‘레전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해 50골을 넣었다. 이는 역대 남자 선수 최다 골 2위 기록이다. 감독으로서도 활약했다. 황 감독은 2011년부터 5시즌 동안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역임하며 K리그1, FA컵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2021년 9월부터 23세 이하(U-23)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안게임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황 감독의 아시안게임 우승은 이번 대표팀 임시 감독 선임에 있어 결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했다. 정 위원장은 “황 감독은 KFA 소속 지도자이며,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성과를 보였다. 국제대회 경험,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이해도를 갖췄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위원들과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황 감독이 A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아도 되는지 다각도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겸직’이다. 황 감독은 현재 U-23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황 감독은 A대표팀 업무에 더해 4월 카타르에서 예정된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겸 아시아 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준비까지 해야 한다.
정 위원장은 “다른 나라 협회에서도 필요한 경우 A대표팀과 U-23세 이하 대표팀을 겸임하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과거 허정무 감독이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A대표팀 감독을(1999년 1월∼2000년 9월), 핌 베어백 감독이 도하 아시안게임·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2006년 7월∼2007년 8월) 겸임한 바 있다.
하지만 U-23 대표팀은 현재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앞두고 있다. 물론 한국 남자 축구는 올림픽 본선에 9회 연속 진출하며 ‘강자’의 모습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일본, 중국, 아랍에미리트(UAE)와 한 조에 속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본선행이 어려워 보인다는 전망이다.
황 감독은 1월 튀르키예 안탈리아 전지훈련 당시 “일본은 항상 주시하고 있고, UAE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다만 중국이 소집훈련을 많이 소화하지 않아서 분석에 대한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라며 올림픽 본선행이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U-23 대표팀은 3월 18일부터 26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서아시아축구연맹(WAFF) U23 챔피언십에 참가해 올림픽 본선행을 위한 담금질에 나선다. 다만 문제가 있다. 정 위원장은 “황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태국과 2연전 소집부터 마지막 경기까지는 올림픽 대표팀과는 별도의 코치진을 꾸려 A대표팀에 나설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최종 점검을 하는 자리를 황 감독이 빠진 채 코치진만 자리하는 것이다.
황 감독은 태국과 2연전 이후 U-23 대표팀에 합류해 올림픽 최종 예선(4월15일~5월 3일)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처럼 올림픽 본선 진출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U-23 대표팀 감독인 황 감독이 A대표팀을 이끄는 상황이 발생했다. 만약 황 감독이 태국과 2연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해 월드컵 본선 진출이 어려워지거나,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정 위원장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 위원장은 U-23 대표팀 파리행 실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두고 “결과가 안 좋게 나왔을 때 어떻게 할 거냐 물어보면, 그건 내가 위원장으로서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원장은 비상근직인 데다가 물러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만큼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와 함께 정몽규 회장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황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는 또 있다. 바로 대표팀 선발 문제다. 특히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요르단전을 앞두고 ‘주장’ 손흥민과 몸싸움을 벌였던 이강인을 3월 A매치에 소집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이강인은 요르단전 전날 식사 시간에 또래 다른 선수들과 탁구를 치다 주장인 손흥민으로부터 “컨디션 관리를 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강인이 이에 반발하다 몸싸움으로 이어지면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이강인은 자신의 SNS를 통해 “축구 팬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하극상’ 논란이 계속되자, 이강인은 런던에서 손흥민을 직접 만나 사과했다. 손흥민은 후배의 사과를 받아주며 “그 일 이후 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달라. 대표팀 주장으로서 꼭 부탁드린다”는 글을 SNS에 게재했다.
둘 사이의 마찰은 봉합됐지만,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A대표팀의 과제이자 황 감독이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잘 짜인 전술로 태국을 상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열된 팀을 추스르고 대표팀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하다.
또한 2021년부터 U-23 대표팀을 맡아온 황 감독은 어린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많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이강인, 정우영, 설영우 등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황 감독은 누구보다도 ‘이강인 활용법’을 잘 파악하고 있다. 다만 이강인에 대한 평가가 반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A대표팀으로 차출하기에는 부담이 심한 것 또한 사실이다. 태국전 대표팀 명단 발표는 3월 11일, 훈련은 18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황 감독의 심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황 감독은 A대표팀 임시 감독직 선임에 대해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민국 축구의 위기다. 전력강화위원회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았고 고심했다”며 “어려운 상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축구에 대한 우려가 많은 걸 알고 있다. 그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리 대한민국 축구가 제자리에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