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잘나가던 한인 사업가를 죽인 자들은 대체 누구일까.
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킬러들의 자백 - 살인 시나리오는 누가 썼나?’를 주제로 필리핀 한인 사업가의 죽음을 집중 조명했다.
2021년 2월 14일 필리핀 마닐라 발렌수엘라 지역의 공동묘지의 한 공터에서 한인 사업가 박승일(당시 55세)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당시 박씨는 목과 몸에 총을 맞고 사망했으며, 차량에서 다량의 혈흔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차량에서 총격을 당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고 CCTV 확인 결과 14일 새벽 1시 20분, 시내로 진입하는 박씨의 차량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 빨간 챠량을 발견했다. 두 차량은 범행 현장으로 함께 이동했지만 12분 뒤 돌아온 차량은 빨간 차량 한 대뿐이었다.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통해 박씨의 사업체에서 일했던 현지인 여성 소피아가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던 소피아는 경찰의 추궁에 “박씨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라고 진술했다.
평소 지병으로 고통받던 박씨가 살해를 거듭 부탁했고, 이에 소피아는 다른 직원 벨라와 함께 킬러를 찾아 나섰다. 이 사건에 가담한 현지인은 모두 8명. 이들은 한화로 190만원을 미리 받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은 8명의 진술이 모두 일치한 등을 토대로 사건 발생 20일 만에 촉탁 살인으로 사건을 종료했다. 이후 직접 총을 쏜 킬러 안토니오와 알버트는 무기징역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교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박씨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설계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또한 터무니없이 적은 착수금 액수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역시 수천만 원을 줘도 안 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05년 아내, 아들과 함께 필리핀을 넘어온 박씨는 2012년 어학원을 운영했다. 나중에는 화장품 사업을 하며 성공한 사업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3년 만에 사업이 망하면서 2017년 마사지 사업을 시작했다. 소비아와 벨라 역시 이 업소의 마사지사였다.
박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현지 한인들 사이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마사지샵에 안 좋은 조직이 엮여 살해당했다’, ‘사이가 나빴던 업소 관계자들이 가게를 차지하기 위해 살해했다’ 등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필리핀 사람들은 청부하지 않고 직접 살해한다. 청부하면 그만큼 돈이 드니 직접 한다. 완전히 이렇게 한발 건너뛰어서 하는 방식은 드물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원한에 의한 살인 같지도 않다. 원한이라면 신원을 없애기 위해 여권이라도 다른 곳에 버릴 거다. 하지만 다 보이게 옆에 있었다”라며 “시신이 있던 장소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금방 밝혀질 수밖에 없는 장소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박씨는 자신의 죽음을 직접 설계한 것일까. 소피아의 진술서에는 박씨가 죽으면 가족이 큰 던을 받을 거라는 진술이 적혀 있었다. 박씨에게 무려 12건의 생명 보험이 가입되어 있었던 것. 사망할 경우 박씨의 아내 김씨가 26억을 받게 된다.
박씨의 보험은 2014년 동일시기에 집중적으로 가입됐다. 한 달 납부하는 보험금 액수만 120만원이 넘었다. 모두 중도 해약 시 환급금과 만기 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오로지 사망 시에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이에 박씨의 가족들은 아내 김씨가 이 사건을 계획했을 거라고 의심했다. 하지만 김씨는 보험 가입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사기 피해로 화장품 사업에 실패하며 7년간 어학원을 번 돈을 한순간 잃었다. 이에 박시는 자취를 감추었고 남편이 사라지면서 아내와 아들도 결국 한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혼자남은 박씨는 2017년 마사지 사업으로 재기를 노렸으나 코로나가 시작돼 또 다시 생활고에 시달렸다.
박씨 가족들은 아내 김씨가 필리핀에서 돌아온 뒤부터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미 필리핀에서 이혼 이야기가 오갔으며, 어학원을 접고 화장품 사업을 하면서 갈등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김씨에 대해 “착하고 곱고 선한 사람이다. 남편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남편 이야기면 100% 믿는다. 남편이 괜찮다고 하니까 한국으로 간 뒤 필리핀에 한반도 안 왔다”라고 말했다.
특히 아내 김씨가 이 사망 사건에서 배제될 수 있었던 것은 소피아가 가지고 있던 유서였다. 박씨는 아내에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편지’라는 이름으로 1번부터 15번까지의 가이드라인을 남겼다.
하지만 문어체와 번역체로 쓰인 유서는 많은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이 유서가 진짜 박씨가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유서와 소피아의 진술이 사건 종결에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특히 김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10개월 전인 2020년 4월 필리핀에 방문한 기록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경찰에 말하지 않았다. 의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가들은 사망 당시 박씨의 모습으로 이 모든 것이 박씨가 계획한 촉탁 살인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전문가는 “세팅 어색하다. 청부는 기습적으로 벌어지는데 피해자가 차량 뒷자리 가운데에서 앞자리의 킬러들에 의해 죽은 건 이상하다. 저항흔도 없고 결박흔도 없다. 암묵적인 합의 하에 자리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한 “제삼자의 의뢰라면 금액이 클 텐데 촉탁이면 사망자가 협조한다는 점에서 가담자도 방아쇠만 당기면 되니 그 가격이면 할 가능성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인들은 “박씨가 형제와 가족을 가장처럼 먹여 살렸다. 책임감이 강했다. 5남매 맏이다 보니 오래 헌신했다”라며 “가족 몰래 마사지 사업을 시작하며 코로나19 확산으로 몇 달씩 이어진 마닐라 봉쇄령에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거 같다”라고 말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당시 아내는 거의 까무라쳤다. 가입을 몰랐던 거 같다. 일부는 알았겠지만 많이 가입되었던 거는 몰랐던 거 같다”라며 “남편의 계획은 알았던 것 같은데 적어도 시기는 몰랐던 거 같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생각했는데 진짜로 들으니 놀랐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은 여전히 아내 김씨를 의심하고 있다. 김씨가 아들이 남긴 유서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하지만 박씨가 남긴 진짜 유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아내 김씨에게 남긴 유서에 적힌 이메일의 비밀번호였다.
그곳에는 부모님과 아내, 아들, 형제들에게 남긴 유서가 있었지만 아내는 이 역시 전달하지 않았다. 박씨는 이 유서를 남기면서 아내에게 “엄마에게 보여주지 말고 돌아가시면 무덤 앞에서 읽어주고 태워라”라고 적었고 아내는 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는 이번 사건이 수많은 의문을 남긴 것에 대해 “필리핀에서는 이 사건이 외국인 사건이고 내국인이 총 쐈다고 자백했기에 수사기관에서는 더 이상 수사를 할 만한 가치가 떨어졌다. 거기서 끝을 낸 거 같다”라고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