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출금 한도 상향 조건 홀로 완화
업계 업체간 암묵적 합의 어긴 것
FIUㆍ은행연합회는 "큰 문제 없다"
업비트 독주 체제 더 공고해질 듯
케이뱅크가 가상자산 거래소 입출금 한도 상향 조건을 완화하면서,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강화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노선 정리를 바라고 있지만, 금융당국이나 지난해 ‘가상자산 실명계정 운영지침’을 제정한 은행연합회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11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해보면, 최근 케이뱅크가 한도계정 해제(입출금 한도 상향) 조건을 변경하면서 가상자산 업계는 이미 확고한 거래소간 격차가 더 커질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은행연합회는 ‘가상자산 실명계정 운영지침(운영지침)’을 마련하고, 그간 서로 달라 이용자 불편을 발생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입출금한도 확대 방식 등을 표준화했다.
이에 따라 이달 1일부터 국내 5개 가상자산 원화거래소는 한도계정의 경우 1회와 1일 입금을 500만 원으로, 출금은 각각 5000만 원과 2억 원으로 제한했다. 정상계정 한도는 입금과 출금 모두 1회 1억 원, 1일 5억 원이다.
차이가 나는 지점은 한도 변경 조건이다. 케이뱅크(업비트)를 제외한 4개 은행의 경우 △최초 원화 입금일로부터 30일 경과 △가상자산 매수 금액 합계 500만 원 이상이다. 케이뱅크는 이달 5일 이 조건을 △실명계좌 연동 후, 최초 입금일로부터 3일 경과 △원화 입금 건수 3건 이상 △가상자산 매수 금액 300만 원 이상으로 변경했다. 큰돈을 거래하려는 신규 고객이라면 당연히 업비트로 가는 게 유리하다.
케이뱅크가 단독으로 한도 상향 조건을 완화하면서, 업계에서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운영지침상 한도 변경 조건에 대한 명시적 내용은 없지만, 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업체 간 암묵적 협의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은행연합회 지침은 사실 (거래소들과) 구두로 합의한 내용”이라면서 “명시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자’고 (거래소끼리 합의)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물론 은행연합회에서 관련 사안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제하거나 제재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서도 “(케이뱅크가) 조건을 변경하기 직전까지 다른 거래소나 은행들이 해당 내용을 몰랐던 만큼, 상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거래소들은 이미 업비트가 80% 가까운 거래 점유율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케이뱅크의 한도 상향 조건이 업비트의 독주를 가속화할 거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7만1000 달러를 넘어서고, 국내에서도 한때 1억 원을 돌파하는 등 상승장이 시작된 만큼, 한도 상향에 유리한 거래소로 신규 투자자가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한도 상향에 걸리는 기간은 27일이나 차이가 나는데, 가상자산 시장에서 27일은 너무 긴 기간”이라면서 “특히 UI나 UX의 차이를 통한 경쟁은 거래소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거(한도 상향)는 아니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나서서 노선 정리를 해주길 바라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 관계자는 “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율이라도 지켜야한다’는 경고성 메시지라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케이뱅크의 한도 상향 조건 변경과 관련한 형평성 논란에 대한 질문에 FIU 관계자는 “FIU는 은행(거래소) 간의 형평성을 맞추는 기관이 아니라 자금 세탁 방지 업무를 하는 기관”이라면서 “형평성 관련 이슈가 있다면 은행연합회에 문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은행연합회 측도 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금융거래 목적 확인(한도 상향 조건)과 관련해 은행마다 각자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서 “다만 이 기준이 너무 다를 경우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서로 비슷하게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케이뱅크 내부 판단에 따라 완화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문제를 삼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