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어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결과에 따라 교원, 학원 관계자 등 56명에 대해 수사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와 유착했다는 ‘사교육 이권 카르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뜨겁게 달군 ‘영어 23번 지문 판박이’ 논란 관련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해당 수능 문제를 낸 A 씨와 소위 1타 강사인 B 씨와의 직접적 거래는 확인되지 않았다. B 씨는 EBS 수능 연계 교재의 원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원을 통해 받은 지문 문항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했다고 한다. EBS 교재 감수에 참여해 지문을 알게 된 A 씨는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며 이를 무단 사용해 23번 문항으로 냈다. 여러 부정행위가 겹쳐져 ‘23번’ 물의가 빚어졌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엄중히 들여다봐야 한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해 자체 조사를 벌여 사교육 업체에 모의고사 문제를 판매하고도 수능·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출제에 참여한 뒤 사교육 업체에 문제를 판매한 22명(2명 중복)에 대해선 비밀유지 의무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 의뢰했다. 이번 수사 의뢰 대상은 교육부 발표보다 30명 이상 더 많다. 카르텔의 뿌리가 교육부 예상보다 훨씬 더 깊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사교육 업체와 교사들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자 유명 강사를 주동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공교육의 보루인 현직 교사들이 적극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더 외면할 수 없게 됐다. 현직 교사가 금전을 주고받으며 문항 거래를 했다. 수능·모평 검토위원으로 여러 번 참여한 고등학교 교사는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교사 8명을 포섭해 조직을 결성했다. 2019~2023년까지 5년간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 2000여 개를 사교육 업체와 유명 강사들에게 공급하고 수억 원을 챙겼다. 수익금은 나눠 가졌다고 한다.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업체를 공동경영하면서 현직 교사 35명으로 구성된 문항 제작팀을 운영하며 문항을 판 고교 교사도 있다. 교단을 지키는 스승인지, 악덕 상혼의 장사치인지 구분할 길이 없다. 3년간 18억9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교사가 EBS 수능 연계 교재 파일을 교재 출간 전 빼돌려 비슷한 문항을 만들어 학원 강사에게 넘기면서 금전을 챙긴 사례도 있다. 사교육 업체에 공급한 문항을 학교 중간·기말시험에 출제한 교사도 있다. 혀를 내두를 일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교원 겸직 허가 가이드라인 등을 발표했다. 카르텔 의혹 대응 조치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한지 의문이다. 전방위적인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감사원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업무 부당 처리도 확인했다고 한다. 잘못된 출제를 걸러내지 못했고, 사후엔 논란 축소에 급급했다. 이 또한 경위 파악과 문책이 불가피하다. 한 점의 의혹이라도 남는다면 1994학년도 도입 이후 30년간 지속된 입시제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