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사)케이썬 이사장, (사)미래학회 부회장
신뢰는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자신의 기대, 약속, 또는 규칙에 부응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그 믿음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양방향 관계에서 발전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을 통해 증명되고, 검증된다.
신뢰가 형성되면 의심하고, 검증하고, 배반했을 때를 대비하는 여러 비용과 노력을 줄일 수 있어서 더 많은 상호협력과 이익 공유가 가능해진다. 반면에 그 믿음을 충족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허물어지면 그 관계도 불안정해지고, 결국 개인관계는 물론 조직과 사회도 붕괴될 수 있다.
인터넷·AI 발달로 거짓정보 넘쳐나
개인의 관계에서 조직, 사회의 관계로 규모가 확대될수록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은 개인 차원의 직접적 경험에서 사회적 차원의 간접적인 정보와 권위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변하게 된다. 대리인의 역할을 부여받거나 자임하는 기관과 언론은 사회의 신뢰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업사회에서 관료 기관과 매스 미디어는 위에서 아래로 정보와 권위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신뢰 형성에 기여했다. 그런 측면에서 산업사회는 그 기관과 언론에 포진한 엘리트들이 지배한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은 이러한 권위 기관과 언론에 도전하는 개인들의 등장, 엘리트에서 대중으로의 권력 이동을 촉진시켰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정보의 생산, 전달자가 될 수 있고 수많은 팔로어가 있는 개인은 그 자체가 언론 기관이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은 개인이 기득권과 권위에 도전하는 주체로, 정보의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생산자로 등장하는 ‘개인의 시대’를 앞당겼다는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터넷에 의한 개인의 시대 등장은 권위 기관과 언론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사회의 신뢰 형성과 유지 기능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강제된 권위와 길들여진 언론에 의해 제한된 정보만을 접하면서 권위와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수용력, 사고력이 길러지지 않은 한국 사회의 특수한 사회적 풍토 속에서 민주화와 동시에 인터넷이 가져온 정보의 홍수는 그야말로 정보 문해력을 뛰어 넘는 쓰나미였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이 된 개인이 쏟아내는 수많은 정보는 개인의 스마트폰으로 바로 전달되면서 개인 간에 주고 받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정보가 순식간에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거짓 정보와 정확한 정보를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을 가져왔다.
이러한 혼란은 동시에 사람들이 유지해온 신뢰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신뢰가 떨어지면서 점차 신뢰할 수 없는 대상 또한 늘어나고 불신의 깊이도 깊어지고 있다.
결국 이러한 불신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조작된 허위 정보,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생성 인공지능은 더 쉽게 더 그럴듯한 가짜 뉴스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사회의 권위와 신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인 선거가 이미 생성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글보다 사진, 동영상이 사람의 믿음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큰데, 그 믿음을 무너트리기 위한 가짜 동영상이 넘쳐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신뢰는 인터넷과 인공지능 시대에 어떻게 다시 형성될 수 있을 것인가. 신뢰의 운명, 아닌 신뢰에 기반해온 인류의 운명이 인터넷과 인공지능에 달려 있다면 너무 과한 우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