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주 대부분이어서 자율배상시 배임 우려" VS "법률적 근거에 의한 배상안 배임 이슈 없어"
금융당국 수장들이 연이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배상이 배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은행권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주요 시중은행의 경우 외국인 주주가 60~70%에 달하면서 배임과 수천억 원대 소송에 대비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사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당 부분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은 데도 자율배상을 압박하는 당국의 발언이 잇따르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자율배상 여부를 놓고 금융당국과 은행권 간의 줄다리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11일 H지수 ELS 분쟁조정분담안을 발표한 가운데 판매 은행들은 주말도 없이 대책회의 및 법적 검토를 진행 중이다. 배상안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대형로펌과 손잡고 소송전을 준비했다. KB국민은행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화우, 신한은행은 화우, 하나은행은 율촌·세종, NH농협은행은 세종·광장에게서 법률 자문을 받고 있다. 은행들은 배상안에 따른 자율배상 수준이 과징금 등 제재와 연계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사회 논의 안건으로 상정해 수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A은행 관계자는 “각 금융사들이 분쟁 기준안에 대한 수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향후 발생할 배임 문제 등 내부적으로도 해결해야하는 과정과 문제가 산적한 상황이어서 당국이 제시한 분쟁조정안 연일 대책회의 및 법적 검토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정부 배상안을 토대로 자율 배상을 하면 은행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NH농협은행을 제외한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외국인 주주비율은 60∼70% 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B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서는 배임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이는 회사와 주주간의 문제로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면서 “주주들 입장에서는 은행이 배상을 통해 전체 수익이 줄어들고 배당이 줄어들게 되면 이사회를 상대로 배임 문제를 걸고 넘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이복현 금감원장은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개인 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 합의가 안되면 사법절차로 갈 수 밖에 없는데 금감원도 법원의 판단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유사 사례, 판례, 손해배상 산정 방법 등을 수십 수백건 봤는데 수년간 판례 등에서 인정한 사례들 뽑아서 책임분담의 개별 요소를 만든 것”이라고 배임과 연결하기 어렵다고 단정지었다.
전날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왜 지금 은행권의 배임 이슈가 나오는지 정확하게 이해를 못 하겠다”며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 공감할 만한 배임 이슈가 있다면 고치겠다”고 했다.
C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의 분쟁조정 기준안은 결국 개별 소비자와 금융사가 보상비율을 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은행에서 제시한 보상 비율에 대해 수용하지 않는 고객의 경우 피해 입증의 책임이 고객에게 가기 때문에 장기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당국의 배상안을 토대로 각 증권사들이 시뮬레이션한 결과 배상금액만 1조~2조 원 대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금융당국은 배상비율이 주로 20~60% 범위 내 분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증권가에서는 은행권의 ELS 배상액이 조단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은행권 전체 배상규모가 1조7000억 원에서 2조 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고 NH투자증권은 평균 배상비율을 40%로 가정해 국민은행이 약 1조 원의 배상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