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책을 내는 시대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책들 가운데 독자의 선택을 받는 책은 매우 드물다. 물론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중에는 '저 책이 대체 왜?'라는 의문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선택을 받은 책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같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그냥 팔리는' 책은 없다. 또 요즘 독자들은 단순히 유명한 사람이 책을 냈다고 해서 사지 않는다. 오히려 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최근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방송인 두 명이 책을 냈다. 김제동은 수필가, 양세형은 시인으로 변신했다. 두 사람의 책을 논평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일부 도서 판매 사이트 댓글에는 책 내용과 무관한 공격성 비난도 발견된다.
김제동은 이미 출간한 책의 누적 판매 부수가 9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전작인 '그럴 때 있으시죠?'는 30만 부나 팔렸다. 작가로서 대중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 책은 구어체로 쓰여 있다. 달변가인 김제동의 입말을 글로 녹였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느슨하지만 따뜻한 공동체를 꿈꾸는 중년 남성의 진솔한 마음이 있다. 반려견 '탄이'와 함께 지내는 그의 소중한 일상이 수수한 언어로 표현돼 있다.
책을 편집한 이선희 나무의마음 편집자는 1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제동 씨의 고백처럼 '전에는 눈이 자꾸 바깥쪽을 향했다가, 지금은 안쪽으로 조금 향하는 시간이 됐어요'라고 말한 대목이 있는데, 실제로 원고 곳곳에서 그런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책은 제동 씨의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낸 아주 작고 기쁜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중에 원고를 정리하고 보니 결국은 우리 사는 일상 얘기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양세형은 지난해 12월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제목은 '별의 길'이다. 그의 시는 쉽다. 쉽다고 해서 가볍거나 얕은 것은 아니다. 그의 시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의 즐거움이 있으며, 어린 시절 사용했던 언어를 잃지 않은 어른의 눈동자가 있다.
"편집자님, 이 시집이 나오면 코미디언이 무슨 시집이냐고 안 좋게 보고 뭐라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전 정말 괜찮으니까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런 분들도 계신 게 당연하죠. 혹시나 그분들이 제 시집을 보고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한번 픽 웃으면 그것도 괜찮죠 뭐. 원래 제 직업이 남을 웃기는 거잖아요."
책을 편집한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는 이날 기자에게 저자와 교정지를 보다가 나눈 대화 일부를 보내주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사람들이 그 어떤 편견 없이 이 시집을 만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던 생각이 들었다"라며 책이 나오고 이 시집을 보고 우습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감동받고 울었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후기들이 많아서 편집자로서 뭉클했다"라고 말했다.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나를 시인으로 만듭니다.
당신의 콧노래는
나를 지휘자로 만듭니다.
당신과의 앞날은
나를 화가로 만듭니다.
당신의 기침 소리는
나를 의사로 만듭니다.
당신의 환한 웃음은
나를 개그맨으로 만듭니다.
그대여,
당신은
나를
만듭니다.
이연실 대표는 "요즘은 숏폼 콘텐츠들이 흥하고 그에 따라 깊고 순수한 진심보다 일순간 스쳐 가는 한 방의 일침이나 위트 같은 것들이 주목받는 시대"라며 "감성충이라거나 중2병 같은 말이 있듯이, 자신의 마음에 일렁이는 수줍은 감정들을 내놓는 걸 놀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인 양세형은 다른 이들이 놀릴 수도 있는 연약하고 상처 입기 쉬운 마음들을 시로 꺼내놓는다. 시 속에서 때론 소년이었다가 청년이었다가 노인이 되어 우리 삶의 가장 여린 면을 보듬고 위로해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