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호기심이 낳은 발견 ‘꼬리뼈의 비밀’

입력 2024-03-19 05:00수정 2024-03-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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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방아를 찧거나 뭔가에 부딪혀 꼬리뼈가 충격을 입으면 꽤 아프고 심하면 병원에 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꼬리가 없는데 왜 꼬리뼈가 있는 걸까. 척추 말단에 자리해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일 뿐 꼬리와는 관계가 없는 뼈일까.

척추동물의 배아발생 과정을 비교해보면 꼬리뼈라는 이름이 적절하다. 사람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배아 단계에서는 꼬리 형태가 존재하지만 배아 말기(임신 8주)에 사라진다.

이때 다른 동물에서는 꼬리를 이룰 척추 말단의 뼈 4~5개가 합쳐지면서 퇴화한 게 미골, 즉 꼬리뼈다. 이처럼 진화과정에서 기능을 잃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기관을 흔적 기관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꼬리뼈와 비슷한 게 고래의 뒷다리뼈다. 수천만 년 전 뭍에서 바다로 간 고래의 조상은 네 다리로 걷는 육상 포유류였다. 그 뒤 수중 생활에 맞춰 진화하면서 앞다리는 가슴지느러미 형태로 바뀌었고 뒷다리는 사람의 꼬리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조그마한 뒷다리뼈는 뒷다리가 나올 자리에 흔적 기관으로 남아있다.

두 다리로 걷는 유인원은 꼬리 불편해

꼬리가 없는 게 사람만의 특징은 아니다. 우리의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 즉 침팬지와 고릴라, 오랑우탄도 꼬리가 없다. 꼬리가 사라진 건 영장류에서 유인원이 갈라져 나온 약 2500만 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인다. 실제 이들의 배아발생에서 꼬리가 사라지고 꼬리뼈가 형성되는 과정 역시 사람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초기 유인원에서 꼬리가 사라졌을까.

꼬리의 기능은 다양하다. 물고기나 악어의 꼬리는 물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추진력을 낸다. 맹수류의 긴 꼬리는 전력 질주할 때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 원숭이는 긴 꼬리를 팔처럼 써서 나무에 매달리기도 한다. 소의 꼬리는 귀찮은 곤충을 쫓는 파리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척추를 곧추세워 두 다리로 이동할 수 있는 골격 형태를 지닌 유인원은 꼬리의 존재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퇴화해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수년 전 과천대공원에서 긴팔원숭이의 움직임을 보며 이 가설을 수긍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름과 달리 긴팔원숭이는 유인원(ape)이지 원숭이(monkey)가 아니다. 나무와 밧줄을 적절히 배치해 열대 밀림을 모방한 공간에서 긴팔원숭이는 말 그대로 긴 양팔로 마치 곡예사처럼 빠르고 우아하게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몸은 직립한 상태이고 중간중간 멈출 때는 나무 위에 두 다리로 섰다. 꼬리가 있다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이름과 달리 긴팔원숭이는 엄밀히 말해 원숭이가 아니라 유인원으로 꼬리가 없다. 줄타기를 하는 사람처럼 긴팔원숭이도 나뭇가지 위로 이동할 때 서서 두 다리로 걷고 양팔로 균형을 잡는다. 반면 원숭이는 네 다리로 걷고 꼬리로 균형을 잡는다. 사진제공 멜버른대
초기 유인원에서 유전자 변이 생겨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사람과 유인원에서 꼬리뼈가 사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전 변이가 밝혀졌다. 태아 발생 과정에서 꼬리 형성에 관여하는 TBXT 유전자 중간에 DNA 조각이 끼어들면서 변이 단백질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제 기능을 못 하면서 꼬리가 될 부분이 퇴화해 사라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생쥐의 해당 유전자에 같은 변이를 유발해 꼬리가 짧아지거나 사라지게 해 이를 증명했다.

게놈이 밝혀진 영장류 종들의 TBXT 유전자 염기서열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유인원만 사람과 같은 위치에 같은 DNA 조각이 끼어들어 있다. 꼬리가 사라진 게 약 2500만 년 전 현생 유인원의 공통 조상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그런데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논문의 제1저자인 보 시아는 수년 전 미국 뉴욕대 박사과정 학생일 때 택시를 서둘러 타다가 꼬리뼈를 심하게 다쳤다. 병실에서 회복하던 중 문득 ‘사람은 왜 꼬리가 없지?’라는 궁금증이 생겨 알아봤고 TBXT 유전자가 열쇠를 쥐고 있다고 판단했다. 시아는 하던 연구를 접고 TBXT 유전자 변이가 원인임을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어 대발견을 한 것이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열렬한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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