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전설들 침체 예상 빗나가
지표 좋지만 체감 경제는 ‘그닥’
괴리감에 ‘바이드노믹스’ 외면
금리 인상 여파에 실질 소득 급감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강한 경제는 월가의 전설들마저 당황하게 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설립자 등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미국 경제는 침체는커녕 견실한 지표 속에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사실 그들의 예상은 타당한 것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22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저축이 증가하고 은행으로 돈이 흡수된다. 자연스럽게 시중에 돈이 도는 속도가 줄고 경제 성장은 둔화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내수 부진은 예정된 수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국인들이 오히려 저축을 줄이고 지갑을 연 것이다. 개인 저축률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평균 4%에서 최근 2년간 4%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미국인들은 경제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저축을 줄이고 더 많이 쓰는 ‘파멸적 소비’를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BBC는 “미국인들은 치솟는 금리, 저축액 고갈, 극심한 인플레이션에도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썼다”며 “경제학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례적인 소비 강세의 원인으로는 △자산 가격 상승 등에 따른 노년층 소비 성향 강화 △청년층의 ‘예방적 저축’ 성향 둔화 △강력한 고용 시장에 따른 자신감 강화 등이 꼽혔다.
미국인들의 강력한 소비는 지표의 착시 현상을 이끌었다. 미국 소매판매와 고용지표는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물가도 최근 고점 대비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표와 현실 경제의 괴리감으로 인해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경제 성과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는 냉담하다. 지표상의 호조에도 서민들의 체감 경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물가·고금리 속에서 미국인들의 실질 소득이 급감했다. 수년간 걸친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차입 비용 증가 탓이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미국인의 주간 소득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약 5% 감소했다. 미국 가계의 연평균 소득 손실은 약 7400달러(약 988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위 소득 가구의 한 달 치 월급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현실 경제와 가장 괴리가 큰 지표 중 하나로 인플레이션이 꼽히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완화 조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특히 식료품 가격은 코로나19 사태 전보다 25% 이상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5%포인트(p) 더 높다.
미국 PBS는 “모든 제품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수치가 낮아진다고 해서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물가가 전보다 천천히 오르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