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포럼 대표ㆍ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
물류증대 이끌어 도시경제 활성화
고밀도 시스템에 공간효율 극대화
부동산 투자와 결합…새 시장 창출
일반적으로 미술품 컬렉션의 최대 90%는 수장고에 숨겨져 있다. 자연은 물론 인공의 공간이 제한적인 이 세상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면적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트렌드는 미술품 수장고 신설이다. 이는 시장의 열렬한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유럽 미술시장에서는 이런 트렌드가 반영된 신개념 민간형 미술품 수장고가 2020년부터 각국에서 앞다투어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파리의 르 부르제 수장고는 눈여겨볼 만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약 30km 떨어진 르 부르제 공항의 미술보존센터는 예술작품보관 수장고를 2020년 3월에 완공했다. 혁신과 특수성을 상징하는 이곳은 예술작품 보관의 하이테크 물류 창고에 그치지 않고 쇼룸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전시까지 보여주며 유럽 및 전 세계 예술애호가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곳은 2017년 예술품 포장 및 운송·관리 전문업체인 셰뉴(Chenue)가 파리공항 운영사인 그룹 ADP(Aeroports de Paris)와 함께 파리 르 부르제 공항에 예술작품보존센터 건설계약을 체결하면서 미술품 물류센터 기능까지 강화시켰다.
셰뉴는 자체 보유 수장고가 최대 용량에 도달함에 따라 새로운 보관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토지를 검색하다가 ADP와 협업했다. 특수기술이 집중적으로 투입된 이곳의 미술품수장고는 복합 단지로서 항공기 격납고에 설계되었다. 2020년 3월 완공되어 3개 층에 걸쳐 2만4913㎡ 규모로 완공된 이 센터는 작품 보관의 안정성 및 온도와 습도 조절을 위한 콘크리트 벽체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제한된 출입으로 보안이 특별 강조되었다. 고객에게 최적의 보안 및 기밀 유지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건물을 최대한 분할함은 물론 건물 내부에서 온도 습도 조건을 조정하여 셀 단위로 맞춤형 솔루션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모든 공간에는 먼지가 없고 공기 중 산소를 고갈시키는 저산소·무산소 유지 시스템으로 화재 및 해충의 위험으로부터 모든 작품과 보관품들은 안전하게 보호된다. 이 수장고는 고객이 특별쇼룸에서 본인의 예술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이 보존센터의 우수한 단열은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이는 효과도 있다.
셰뉴는 1760년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의 왕실 린넨 포장 전담사였던 앙드레 셰뉴(Andre Chenue)가 설립한 회사로 대를 이어 왕실의 의류 운송 및 보관은 물론 트렁크 제조를 맡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250년 이상 셰뉴는 물품 상자 제작 및 포장으로 회사의 명성을 유지했는데 현재는 예술품 물류 운송까지 전담하면서 1995년에 물류 서비스 전문그룹인 호루스 파이낸스(Horus Finance)에 편입되었다. 미술분야에서는 프랑스 루이비통 재단은 물론 베르사유 작품 운송 및 보관 업무 진행 등 자국을 비롯하여 국제적 미술품 운송 부문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실 르 부르제 공항 내 부지는 이미 세계적 미술 거상인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이 아트 갤러리를 설립하였을 정도로 예술 작품 및 애호가들과는 관계가 깊다. 토지 가용성, 보안, 파리 및 파리 샤를드골 국제공항과의 접근성, 인프라 품질 등 모든 기준이 미술품 수장고 부지로서 적합했다.
또한 이 미술품수장고 건설 프로젝트는 항공을 기반으로 한 육로와 해로를 활용한 물류 이동량 증대를 통한 르 부르제 도시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으로 추정되어 지방 당국의 협조를 이끌어냈다.
그룹 ADP는 부동산 개발 및 투자사로서 타당성 검토를 면밀히 마친 후에 이번 미술품 수장고 프로젝트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유럽 및 세계적으로 미술품 거래 수요가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고 작품매매에 따른 부가서비스인 운송 및 보관시장의 잠재력도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마케팅에 힘입어 개인 및 공공고객의 예술작품 및 유산 가치가 있는 모든 문화자산 소장 고객이 순조롭게 유입·확보되어 보관 및 물류를 통한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지개발 및 부동산 투자사와 결탁한 이 트렌디한 미술시장의 경향은 대체할 수 없는 미술품 컬렉션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동시에 본인의 작품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편리성과 안정성에 기초한 시장수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되었다.
국내에서는 최근 대중도 개방형 수장고를 방문하여 각 컬렉션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인기몰이를 한 개방형 수장고는 국내 첫 사례로, 전시를 겸하는 형태로 많은 관람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유럽의 미술품 보관 물류센터에서 한층 더 진화하여 복합전시형태까지 가미한 다각도 수장고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개방형 수장고는 다양한 유형의 작품 보관은 물론 수장에도 유용한 그리드형 인테리어로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작품을 저장하고 전시한다. 이런 장점 덕분에 기존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고밀도 수장 시스템은 여러 개의 공간을 하나의 통로로 결합하여 많은 공간을 절약시켜 물리적 설치 공간을 최대 75%까지 증대시키고 있다. 이 결과로 오버헤드(조명, 난방, 냉방, 청소)에 대한 이산화탄소(CO₂) 절감 효과까지 얻고 있다. 더불어 안전 및 보안을 극대화하기 위한 컨트롤마스터, 시큐리티마스터 전문가들과 함께 최첨단 통제기술로 고객자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한다.
미술품수장고는 여러 박물관이나 기관의 다양한 소장품을 하나의 중앙 집중식 시설에 보관함으로써 통합 컬렉션 관리를 통한 귀중한 리소스를 공유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국내에서도 예술애호가 및 투자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미술품수장고는 미술작품에 관한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작품 감정을 통한 시가와 진위 판별을 필두로 전시와 위탁판매는 물론이거니와 보관과 해외이동까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선보이는 장이 되고 있다. 인천공항에 문을 연다는 아시아 최대 미술품 수장고가 사뭇 기대된다.
백남준포럼 대표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