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일찍 여읜 친구는 종종 화장터의 생소함을 회생했다. 근엄하고 슬픈 분위기보다는 주로 분골(粉骨) 직전 뼈에서 떨어져나온 쇳조각에 관한 얘기였다. 뼈 옆에 덩그러니 놓인 나사가 너무 어색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무릎뼈를 지탱하던 나사였으니 힘과 열에도 멀쩡한 게 당연했다. 그 친구는 어느 순간 아버지가 수술을 받았단 사실을 잊어버렸는데, 마지막에 마주한 쇳조각은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될 듯하다고 했다. 쇳조각으로 연결된 장면이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게 한 셈이다.
시선을 사회로 돌려도 여러 장면이 스친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도 그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렸던 사고가 ‘수사 외압 의혹 사건’으로 번지는 순간부터 기이한 장면이 반복됐다.
주요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돌연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호주로 떠났다. 방위산업 분야에서 중량감 있는 인사였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을 이해하더라도, 시기적으로 의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를 이유로 11일 만에 급거 귀국하고, ‘도피 대사’ 논란 속에 25일 만에 직을 사퇴했다. 모두 전례 없던 일이다. 이 전 장관은 속 시원한 해명 대신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실종자를 수색하다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던 한 해병대원은 생존 직후 어머니와 첫 통화에서 “내가 채 상병을 못 잡았다”고 말하며 울었다고 한다. 지금은 제대 후 사회로 복귀한 이 청년에게 당시 기억은 지워지지 않으리라고 감히 짐작할 뿐이다.
저마다 기억하는 장면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앞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채 상병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규정했다.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줄줄이 영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이 사건으로 고소·고발이 쌓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관계자들을 본격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여 의혹까지 엮여있는 만큼 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미래의 결정적인 장면이 될 수도 있다. 의혹을 걷어내고 나면 쇳조각처럼 진실이 완전히 남아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