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의사들 의견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여 총선 패배” 주장
국민의힘이 22대 총선에서 참패하며 8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공의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등 의료대란에도 변곡점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2월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를 발표하며 긍정적인 여론과 지지율 상승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 총선까지 그 여세를 이어가지 못했개 때문으로 풀이된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정부가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의대 증원을 밀어붙인 것이 여당 패배의 한 원인이라며, 일방적인 의대 증원 정책 추진을 중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범야권은 180석을 넘게 확보했으나 여당인 국민의힘, 국민의미래는 108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예상했던 대로 국민의힘이 대패했다. 이 예상은 2월 6일 윤석열이 필정패(필수의료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그 순간 나왔다”면서 “국힘의 패배를 바라면서도 대패를 바라지 않았다. 개헌선은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번 결과에 대해) 환호하는 의사는 없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오히려 근심이 훨씬 늘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주수호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 및 가족들을 분노케 한 결과가 이번 총선 국힘 참패와 윤 정부의 식물화”라며 “의사집단을 강경 불법노조 다루듯 한 용산과 그것을 말리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국힘당이 자초한 결과다. 허허벌판에 기초부터 튼튼한 새집을 짓는다는 각오로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정권에 대한 심판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졸속으로 추진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파기하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1기 위원장이었던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개인 기본권을 침해한 것을 용서하지 않은 국민, 민심의 심판”이라고 규정하고 “(의대정원확대) 졸속 추진, 거짓 의정 협의를 즉각 파기하라”고 밝혔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씨는 이날 “의대 증원 과정에서 보여준 윤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보수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정부가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여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게 된 국민의힘 당선인 일부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기 성남분당갑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한 안철수 의원은 지난달 18일 선대위 회의에서 “단계적 의대 증원으로 파국을 막아달라”고 밝힌 바 있고, 같은 달 26일 정부에 정책 재검토를 촉구한 바 있다.
이날 안 의원은 SNS 올린 ‘당정은 민심을 받들어 전면혁신에 나서야 합니다’ 글을 통해 의대 증원 1년 유예와 단계적 증원으로 국민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안 의원은 “의사들도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오고, 정부도 증원의 전제 조건으로 필수의료인력 및 의사 과학자 확보 방안, 지방 의료 발전을 위한 법률, 의료수가 조정, 투자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따. 특히 안 의원은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5선에 성공한 윤상현 의원도 자신의 SNS에 “출구 없는 의료 대란, 국민의힘 지도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와 의사가 직접 충돌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국민생명과 건강’이라는 양측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대타협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다만 의대 증원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 만큼 강대강 대치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이달 1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결코 과도하지 않고, 최소한의 규모라며 (의료계) 기득권 카르텔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총선 후 입장을 통해 윤 대통령은 “국민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의료계와의 대화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료계도 의대 증원에 대한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임현택 의협회장 당선인은 이날 총선선 결과가 나온 뒤 “마음이 참 복잡하다”라는 단문의 글을 SNS에 게재했다. 윤 정부의 의료개혁을 ‘대한민국판 의료 문화대혁명’이라고 비판할 만큼 의대 증원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을 500~1000명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 임 당선인은 이날 회장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유일한 의사 법정 단체로서 의협의 대표성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대화파트너로 종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당선인은 이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한불교조계종, 천주교주교회 등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현 사태 중재를 위해 힘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