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배심제, 편파 논란 벗어나 중립적 판단 가능
‘검찰 개혁’을 내세운 야권이 제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들 가운데 검찰 출신인 당선인들마저도 “검찰 독재 청산”을 외치며 검찰 조직과 권한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정부부터 시작된 검찰 개혁으로 이미 형사절차가 상당히 흔들린 만큼, 공약 이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이 180석 이상을 확보하며 정부에 대한 견제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180석이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과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종결 등으로 입법에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야당이 서로 뜻만 모으면 주요 정책으로 내건 검찰 개혁 관련 법안을 여당의 동의 없이도 수월하게 입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에서 12명의 비례대표를 국회에 입성시킨 조국혁신당은 검찰개혁을 ‘10대 정책’ 중 1번으로 내걸었다.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분리하고 기소청으로 전환 △검사장 직선제 도입 △기소배심제 도입 등이다. 2024년부터 법안을 발의하고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체적인 이행 기간까지 내걸었다.
검사 출신인 당선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18명의 당선인이 검사 출신이며, 이들 중 9명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이다. 국회에 입성하는 민주당 소속 박균택‧이성윤 전 검사 등이 “검찰 개혁”, “검찰 독재 청산”을 외쳤다.
이 전 검사는 주요 공약으로 ‘김건희 종합 특검법’ ‘윤석열‧한동훈 특검법’을 제안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찰 개혁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같은 공약이 이행되면 향후 검찰 수사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3일 주례 간부회의에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절차가 복잡해지고 수사기관 간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져 형사사법 비효율과 수사 지연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로 인해 형사사법시스템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검찰청을 ‘기소청’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은 문재인 정권에서 검토된 내용 중 하나다. 검찰이 가지고 있던 수사 기능을 다른 수사기관 등으로 넘기고 검찰은 기소 여부만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정부의 검찰 개혁 이후 수사 지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 공약이 이행되면 앞으로 경찰에 검찰이 보완수사를 지시하는 것도 더 어려워지고 절차는 복잡해지는 등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며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고 기소만 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의 수사 방해 또는 지연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사장 직선제는 검찰 권력을 견제한다는 취지로 거론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 검사장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임명제 공무원’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권역별로 그 지역 국민들이 검사장을 선출하면 그 검사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권력 분산이 아니라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소배심제는 검찰이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로부터 기소 여부를 승인받는 제도로 현재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와 비슷한 개념이다. 검찰 기소권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야권의 검찰 개혁 공약 가운데 기소배심제는 ‘한 번 검토해볼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9년, 2012년 보수 정권에서도 기소배심제 도입을 비롯한 사법개혁안을 내놓았고, 대검찰청에서도 2010년 수사배심제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이 교수는 “특정 사건에 대해 검사들도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고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했다는 편파 수사 논란에 휘말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 난다”며 “수사심의위원회처럼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정도로 도입 여부를 신중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