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정 갈등, 시간만 끌어 답을 구할 순 없다

입력 2024-04-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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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근무지를 이탈한 지 두 달이 됐다. 전국 전공의 약 1만2000명 중 93%가 응급실, 중환자실 등의 환자를 내팽개친 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임의나 전문의(의대 교수 등)가 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외래진료, 수술은 눈에 띄게 줄었다. 제자를 챙긴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낸 의대 교수들은 효력이 발생하는 25일 병원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치료 골든타임을 놓쳐 억울한 죽음을 맞은 사례가 늘고 있다. 경남에선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60대가 병원 6곳에서 받아주지 않아 사망했다. 부산에서도 50대가 10곳 이상의 병원에서 수용을 거부당한 끝에 사망했다. 모두 대동맥박리 질환의 초응급 상황이었다고 한다. 충북에서는 도랑에 빠진 33개월 아이가, 전신주에 깔린 70대 여성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의료계 주장대로 전공의 이탈이 사망의 직접적인 요인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허망하게 숨지는 사례가 줄을 잇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술이 미뤄지는 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이다. 난산 증상을 보이는 산모들은 자신은 물론 태어날 아기의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강 대 강’ 대치 양상은 여전하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 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킬 것이라고 한다. 앞서 오늘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11일 만에 중대본 브리핑을 재개할 계획이다. 하지만 낙관은 어렵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의료개혁특위 출범에 협조는커녕 반발할 개연성이 많다. 정부가 갈등 조정 기능을 원만히 수행하는 대신 외려 갈등을 키우는 현실은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하지만 의료계의 독선과 오만은 훨씬 더 큰 문제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총선 여당 참패가 의대 증원을 중단하라는 국민 심판이라고 했다. 이런 견강부회가 없다. 노동단체, 시민단체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의대 증원을 원한다는 여론조사가 넘쳐난다. 전공의들은 복귀 조건으로 원점 재검토, 박 차관 경질, 군 복무기간 단축, 파업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혀를 차게 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의료 개혁은 국민 생명,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다. 도돌이표가 아닌 마침표를 속히 찍어야 한다. 의정 갈등은 병원 차원을 떠나 대학 입시 혼란으로 번지고 있다. 2025학년도 정원 관련 학칙을 개정해야 할 전국 주요 대학들이 과제 처리를 미루고 있다고 한다. 불확실성이 워낙 큰 탓이다. 전국 고교들은 덩달아 입시상담을 포기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입시 준비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과 고통도 클 것이다.

시간만 끌어서는 답을 구할 수 없다. 정부는 원칙에 따라 바른길을 찾아야 한다. 눈과 귀는 크게 열 일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민·의·당·정 4자 협의체’ 구성 제안도 긍정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야의 협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민심이 하늘이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답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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