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지 곳곳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시공사는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조합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치하다 끝내 시공 계약을 끊어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선 이러한 조합의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되기 보단 업황을 고려하지 않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단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 성남시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과 체결했던 시공사 선정 계약을 해지했다. 해지 금액은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 각각 4185억 원씩 총 8370억 원이다.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은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일대에 지하 6층∼지상 최고 30층 39개동, 3198가구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조합은 앞서 2018년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순항할 줄 알았던 사업은 공사비 문제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시공단은 공사비를 기존 3.3㎡당 445만 원에서 659만 원으로 50% 가량 올리고, 공사 기간도 46개월에서 53개월로 연장할 것을 요청했다. 조합은 과도한 요구라고 맞섰고, 결국 시공단과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이달 13일 임시총회를 열고 시공자 공사 가계약 해지 결의의 건을 가결했다.
이처럼 조합과 시공단이 공사비로 씨름하다 종국에 시공계약을 해지하는 사례는 전국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부산 괴정5구역 재개발은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롯데건설 컨소시엄과 계약을 해지했다. 3.3㎡당 471만 원에서 649만5000원으로 인상해달라는 시공단의 요청을 조합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도 공사비와 분담금 등으로 시공사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이 사업의 시공사였던 GS건설은 3.3㎡ 650만 원으로 수주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분담금이 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면서 조합 내홍이 심화했고, 결국 지난해 11월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업계에선 이들 사업지가 새로운 시공사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갈등의 단초가 된 공사비의 경우, 과거 계약 당시 보다 현 시점의 건설 원자재값, 인건비, 금리 등이 모두 상승했단 점에서 조합이 원하는 공사비는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실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공사비원가관리센터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주거용건물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1(잠정)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존 입찰 조건 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시공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시공 계약을 해지한 건설사들은 대부분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주택 브랜드를 보유한 1군 건설사들이다. 후발 주자로 입찰하게 될 건설사들이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우위를 갖춘 곳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또한 건설사들의 선별수주 기조가 유지됨에 따라 앞다퉈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조합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경쟁 입찰'이 성사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시공계약 해지 안건이 상정될 때 마다 조합 내부에서 반발이 이어졌던 이유다.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더 소모되면서 분담금만 늘어날 수 있단 게 업계 내부의 목소리다.
시공계약을 해지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시점보다 좋은 공사비 조건으로 시공계약을 맺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본 건축비, 자재비 등이 모두 오른데다 상급지가 아닌 이상 출혈 경쟁을 하면서 까지 수주에 임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합 입장에선 1군 건설사가 나간 자리를 더 좋은 건설사가 들어오기 바라겠지만 이 또한 대외여건을 고려하면 낙관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