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조원 개입에도 다시 엔저로
170엔대 치솟으면 일본 수입물가 13.5%↑
“엔저, 한국 원화·중국 위안화에도 악영향”
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뉴욕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57엔 후반대에서 움직였다. 이번 주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이 확실시됐지만, 엔화 가치가 다시 약세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9일 롤러코스터처럼 큰 변동성을 보였다. 당시 오전 한때 34년 만에 처음으로 160엔대를 돌파하고 나서 오후 갑자기 154엔 선으로 떨어졌다. 한때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통했던 엔화 가치가 몇 분 새 3%에 가까운 변동성을 보였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엔화 약세에 급제동이 걸리자 시장에서는 당국 개입 효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은행(BOJ)의 당좌예금 잔고를 바탕으로 일본 금융당국이 엔화 가치를 사수하기 위해 5조5000억 엔(약 48조 원)을 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만 일본 재무성이나 일본은행 모두 개입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개입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자 강달러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는 전날 1분기 고용 비용 지수(ECI)가 전분기 대비 1.2%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0.9%)는 물론 시장 전망치(1.0%)를 웃도는 상승 폭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개시 시점은 더 멀어지게 된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로 엔저가 이어지면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는 도움이 된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26일 금리를 동결했는데 시장에서는 엔저를 사실상 용인한 것으로 해석했다. 현지 언론들은 일본은행이 올여름 이후에나 추가 금리 인상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블룸버그는 “가장 지루한 통화 중 하나였던 엔화가 전 세계 주요국과의 금리 차 확대 때문에 투기성 통화로 변모하고 있다”며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당국이 반복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라는 관측을 넘어 앞으로 변동성이 더 크고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엔저 효과를 누리던 일본 기업들도 이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쿠라 마사카즈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엔저는 과도하다”고 말했다.
메이지야스다종합연구소는 엔·달러 환율이 170엔까지 오르면 일본 수입물가가 13.5%나 치솟고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은 마이너스인 상태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이어도 수입물가 상승률이 8.7%를 기록해 올해 10월 이후에야 실질임금이 플러스로 전환할 것으로 관측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엔화 약세는 부담이다. 37년 경력의 라지브 드멜로 감마자산운용 매크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엔저는 한국과 같은 일본의 경쟁국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또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중국의 노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