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집합건물 기준)는 1만7917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1만1339건)보다 58% 증가했다. 2022년 1∼4월(2649건)에 견주면 6.7배나 많다.
임차권등기는 임대차 계약 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등기부 등본에 미반환된 보증금 채권이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제도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대항력·우선변제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전세 사기 등의 피해로 이어질 개연성이 없지 않다. 세입자는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 임차권등기의 급증세 통계를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이 대표적이다. 보증보험을 취급하는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미반환 보증금을 먼저 대위변제해주고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회수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보험 가입은 유무형 비용이 든다. 보험 가입 조건도 있다. 더 큰 문제는 HUG의 안전판 기능이 급속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앞서 2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전세 사기 특별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정부가 언제까지 재정으로 에인젤(천사) 역할을 해줄 수 있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HUG 반환보증 체제도 마찬가지다. 이대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HUG의 전체 보증 잔액은 지난해 말 618조3149억 원이다. 1년 전보다 22조 원 불어났다. 전세 사기 등에 대응한 대위변제액도 급증세다. HUG의 지난해 전세 보증 사고 금액은 4조3000억 원에 달해 역대 최고였는데 올해 1분기는 1조 4354억 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1분기보다 80% 급증한 분기 기록이다.
HUG는 전세 사기가 크게 파장을 빚기 시작한 2022년 4087억 원 적자를 봤다. 지난해 순손실은 3조8598억 원이다. 2년 연속 순손실이다.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손실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예정일인 28일 민주당이 강행 처리하겠다는 전세 사기 특별법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1일 대구에서 목숨을 끊은 여덟 번째 전세 사기 피해자가 나온 만큼 ‘선 구제 후 구상’을 핵심으로 하는 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고민과 논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전세제도의 구조적 맹점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구하지 않는다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이 될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공적 반환보증 체제가 지속 가능한지 들여다볼 때가 됐다. 반환보증과 대출보증이 진정 서민을 돕는 제도인지도 실증적으로 살펴볼 일이다. 전세제도는 과거 경제가 급성장하고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오를 때 유기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계속 통할 것으로 믿기 어렵게 됐다. 전세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 대안 모색에서 진정한 출구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