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술집에서 소주병 뚜껑을 이로 따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지금은 돌리는 형태로 바뀌었다). 꽃게탕을 먹을 때 집게발을 아작아작 씹어먹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정월대보름에 부럼 깨물기라며 호두를 깨기도 한다. 치아가 약한(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다들 따라 할 엄두는 나지 않는 행동이다.
물론 치과의사들은 딱딱한 음식을 깨물거나 병따개를 대신하는 행동이 치아 건강에 나쁘다며 말리고 있다. 치아의 표면을 이루는 법랑질은 인체가 만드는 조직 가운데 가장 단단하고 치밀해 얼음이나 집게발 껍질과 맞붙으면(씹으면) 이기지만 그 와중에 미세한 금이 갈 수 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결국 균열이 커져 치아가 약해지고 결국 음식물에 지는(이가 깨지는) 날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변에서 딱딱한 음식을 먹다가 이가 깨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딱딱한 걸 즐겨 먹다가 치아가 손상되는 건 사람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해달의 식습관과 치아 건강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는데, 치과의사들의 조언이 그대로 적용됐다.
TV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바다 표면 위에 둥둥 떠 누워있는 해달이 배 위에 돌을 올려 두고 조개 같은 먹이를 내리쳐 깨서 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즉 해달은 사람처럼 도구를 이용해 딱딱한 먹이를 먹는 똑똑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해달을 관찰하면 개체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는 빈도가 제각각이라고 한다. 웬만하면(최대 98%) 돌로 깨서 먹는 (필자처럼) 소심한 녀석들도 있는가 하면 평생 도구를 한 번도 쓰지 않는 개체도 있다. 이빨로 깨물어 안 되면 말지 여러 차례 내리쳐 깨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인내가 없는 녀석들일까.
물론 성게나 전복처럼 상대적으로 먹기 쉽고 영양이 풍부한 먹이가 많을 때는 도구 사용 빈도가 치아 건강에 별 영향을 주지 않지만 먹을 게 부족해져 조개, 게, 홍합, 고둥처럼 몸 전체가 단단한 껍질로 덮인 먹이도 닥치는 대로 먹어야 할 때는 주요 변수가 된다. 연구자들은 후속 연구에서 각 개체의 도구 사용 빈도로 인한 치아 건강이 수명과 자손의 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계획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인류학자 다니엘 리버만 교수는 도구를 써서 식재료를 가공한 게 불을 이용한 요리의 발명만큼이나 인류 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음식을 돌로 으깨거나 칼로 썰어서 먹으면 씹는 횟수와 씹는 데 들어가는 힘이 꽤 줄어 소화 효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치아 손상이 줄어든 것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임플란트의 등장으로 “어차피 치아도 소모품”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치아 건강에 소홀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 다 마신 아이스아메리카노 잔에 남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싶을 때 이번 해달 연구를 떠올리면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