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식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국회 본회의 회부를 앞두고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물론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정부 부처 관계자와 전문가들도 나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선구제를 위한 금융지원 결과가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허점이 있고, 자금투입 방식의 적정성에도 문제가 있어서다. 법 개정 취지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3일 국토부와 법무부, 금융위는 오후 서울 한국부동산원 강남지사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종합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 이장원 국토부 피해지원총괄과장, 임형준 금융위 거시금융팀장, 최형규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김경선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경·공매지원센터 팀장, 최우석 HUG 전세피해지원기획팀장, 왕인창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사업처장, 박종인 LH 전세피해지원팀장, 국토연구원 박천규·윤성진 박사, 안형준 법무법인 감동으로 변호사, 정경국 대한법무사협회 법무사, 변웅재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장(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김근용 한양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28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선구제 후회수' 방식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다.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먼저 보상을 실시하고, 차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다. HUG 등 공공을 통해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을 허용하고, 이후 경·공매 절차에서 배당이나 피해주택 매입·매각을 통해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이 개정안에 담겨 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의 가장 큰 한계는 형평성 문제다. 안형준 변호사는 "개정안이 말하는 선구제 후회수 대상은 모든 전세계약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한 경우가 아니라, 임대인이 두 가구 이상과 체결한 계약에서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는 예외적 경우"라며 "전세사기는 아니지만 임대인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나 한 임차인이 한 가구에만 전세사기를 친 경우에는 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이 부은 주택청약저축을 선구제에 쓰고 난 뒤, 빈 곳간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개정안이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서 전세사기 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하도록 했지만 '후회수'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장원 국토부 과장은 "전세사기 보증금 반환채권은 부실채권이다 보니 회수는 어렵다"며 "이미 49조 원까지 있던 기금 여유자금이 지금 13조9000억 원까지 급감했다"고 밝혔다.
변웅재 위원장은 "주택도시기금법과 충돌한다"며 "기금을 운용할 때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 위탁받는 사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기금은 국민 주거복지 증진을 위해 국민주택청약저축 등으로 조성된 자금이기 때문에, 기금을 활용한 지원 방식은 부채성 채권 투자 성격"이라며 "그럼에도 아무런 투자 한도도 없고 절차적 규제도 없으며 공정한 가치평가라는 불확실한 개념만 있다"고 말했다.
체계적이지 못한 개정안이 오히려 향후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선구제'라는 별칭과 달리 피해자 지원에 한계를 갖고 있는 내용들이어서다.
임형준 팀장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선순위 저당 채권을 매입하는 방안 역시 후순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며 "결과적으로 혜택이 피해자가 아닌 중간 채권자에게 갈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임 팀장은 "캠코가 매입한 이후 금융회사에 매도하는 것으로, 경매에서 배당을 적게 신청해 피해자를 간접 지원하는 방식"이라며 "캠코의 선순위 채권과 후순위 피해자의 임차보증금 반환채권 사이 다른 채권이 있다면, 캠코가 배당을 줄여준 효과가 피해자에게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성진 박사는 "선구제 후회수 방법론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며 "피해자들이 이 정책을 이용하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 피해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에서는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매매대금을 일부 지급하고 사후 정산한다고 돼 있지만 사후 정산이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현재 개정안대로는 신탁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자, 무권계약 피해자는 '전세사기 피해자'에 해당하지 않아 여전히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