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은 전도, 대류 그리고 복사 세 방식으로 전달되는데, 앞의 공기 얘기와 관련이 있는 건 전도다. 열을 책에 비유해 설명하면 전도는 앞사람이 뒷사람에게 직접 책을 전해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원활하게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공기가 이에 속한다. 그래서 공기에 ‘열절연체’란 이름이 붙는다.
강의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을 받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그날은 유독 더했다. 그래서인지 강의하는 게 유난히 힘들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강좌의 수강생 전원이 어문학 혹은 상경계열인 것도 영향이 있었다. 이제까지는 늘 공학도 아니면 자연과학도들을 대상으로 물리 수업을 했었다. 강의 내내 긴 수식들이 칠판에서 춤을 췄다는 의미다.
물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수학은 당연히 잘하는 걸로 여겨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왜?’라는 의문이 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학과 물리학은 엄연히 다른 학문이다. 나의 종이장처럼 얇은 지식으로 이 둘의 차이를 기술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배운 수론이나 선형대수, 기하학 등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수학은 공식을 외우고, 그걸 응용해 문제를 푸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수학자들은 무엇을 연구할까?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예로 “직각삼각형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곡선의 길이는 어떻게 구하나?” 등이 있다. 추상적이고, 자연이나 인간 사회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질문이 주요 주제인 경우가 많다. 연구방법으로 보면 우선 출발을 위해 ‘정의와 공리’라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증명이라 불리는 연역적 방법을 통해 명제의 진위를 결정한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좀 더 풀어보자면 피타고라스의 정리, 즉 ‘직각삼각형에서 빗변 길이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과 같다’에서 시작해 이게 모든 직각삼각형에서 성립되는지를 지나 직각삼각형의 정의까지 확장된다. 수학 강의를 들을 때마다 왼쪽에서 시작된 글을 오른쪽부터 읽는 느낌이 들어 혼자 마구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물리학은 이런 수학을 매개 언어로 하니 뭐가 다를까 싶을 수 있다. 이 학문 역시 아래부터 쓰기 시작해 위에서 읽어 내려오는 글과 유사하지 않냐 싶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실험, 관찰 그리고 통계 등이 주요 연구 수단인 것도 그렇고, 모델 정립이나 실험 데이터 분석에 사용되는 수학 역시 원 수학(?)에 비해 조금은 너그럽다.
일례로 고전역학을 들어보자. 고전역학은 거시차원에서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인데, 이때 미적분학이 응용된다. 사실 미분은 함수의 연속성을 전제로 하는데, 물리에선 이걸 굳이 증명하고 그러니 이 방법을 써도 된다는 것까지 확인하지는 않는다. 두 점을 직선으로 이을 때의 길이를 거리라고 불러도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이는 물리 방정식이 공리가 아닌 물리적 실체에 기반해서 유도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본다.
이처럼 수학과 물리학을 등호로 둘 수 없는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정교함과 단순함’이란 아름다움을 준 수학을 모르고 물리학의 강을 건너는 건 쉽지 않다. 더구나 긴 시간 이 수단에 의지한 나와 같은 물리 왕초보에겐 더욱 힘든 일이다. 속도와 속력이 같지 않고, 무게와 질량은 완전히 다르다는 게 너무 깊이 박혀 있다.
앞서 말한 어문학 혹은 사회계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너무 어렵다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 친구들은 갖고 있는 능력과는 무관하게 수학 앞에서 심하게 낯가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선택한 교재조차 ‘수학 없는 물리’이건만 흥미롭고 쉽게 가는 게 만만치 않다. 물리와 조금이라도 친해지라고 과장과 생략을 일삼는데, 그 와중에 ‘아… 이건 꼭 정확한 말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한마디로 물리가 엄격하지만 불친절한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학기 내내 내 강의가 성에 차지 않아 동동거렸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