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특허권 매입 후 “특허침해, 합의금 달라”
“제품 개발 단계서 특허 침해 가능성 살펴야”
기업 간 기술 개발 경쟁이 심화하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서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특허 괴물’로 불리는 특허자산관리업체(NPE)가 제기한 소송이다. NPE 소송으로 인해 국내 기업의 부담이 상당한 만큼,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대비를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 누설 등) 혐의를 받는 안승호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수사 중이다. 삼성전자 지적재산(IP) 센터장을 지낸 안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에서 퇴사한 뒤 2020년 NPE를 설립했다.
안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 내부 직원과 공모해 중요 기밀자료를 빼돌렸고, NPE를 통해 삼성전자를 상대로 2021년 미국 법원에 특허침해소송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가 음향기기 업체인 ‘테키야’의 오디오 녹음 장치 등 특허 10여 건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전형적인 NPE의 소송 방식이다. A 기업으로부터 특허권을 산 뒤, 이와 관련된 B 기업에 접근한다. “특허를 침해했으니 특허 사용료를 내라”며 협상을 시도하거나, 민사 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비실시 NPE’라고도 부른다. 보유 특허를 활용해 직접적인 생산 활동은 하지 않고, 특허권 행사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자를 뜻한다.
물론 NPE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정당한 특허권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방어형 NPE’도 있다. 필요한 특허를 먼저 매입해서 회원사에 대한 특허 침해 소송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악질적으로 한국 기업들을 공격하는 NPE가 심각한 문제다.
검찰은 최근 안 전 부사장의 공범들을 재판에 넘겼다(관련기사: [단독] 영업비밀 빼돌린 전 삼성전자 직원들 재판 행…공소장 살펴보니). 해당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5년 동안 NPE로부터 약 200건에 달하는 특허 침해소송을 당했다. 역대 최다 피소기업이라고 한다.
주로 삼성전자와 LG전자, 삼성디스플레이, 현대자동차와 같은 기술 기업들이 그 타깃이다. NPE들은 작은 기업보다 넉넉한 합의금을 줄 수 있는 대기업을 찾는다. 안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에 6500만 달러(약 886억 원)의 라이선스 계약체결을 요구했다.
NPE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미국이다. 특허법 시장이 활성화돼서 특허권 매물이 많고, 특허와 기술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엄격해서다.
특허청에 따르면 미국에서 우리 기업을 상대로 진행되는 특허소송 중 NPE가 제소한 비율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73.3→70.9%→69.4%→77.6%→84.6%이다. 이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제소가 90.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합의금을 노린 NPE의 소송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소송이 늘고 있다”며 “정당한 특허권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불성실하게 협상하거나 심지어 기술 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요구도 꽤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그 심각성을 알고 국내 기업들에 지원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특허청은 지난해 △비실시 NPE 분쟁 위험도와 분쟁위험 특허를 분석해 경보 △NPE의 특허 매입 동향 등을 점검해 제공 △NPE 특허의 무효 자료 조사 지원 △NPE 공격의 공동 대응을 위해 산업별 협·단체와 협력체계 구축 등 대책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다른 나라에 25만691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특허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전문 조직인 IP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관련 특허 관리를 위해 반도체(DS) 부문 내에도 전담 IP센터를 운영 중이다. 최근 NPE 소송이 늘어나며 글로벌 특허법 전문인 사내 변호사 수도 늘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우정 카이스트 교수는 “사전에 기업들이 특허 침해를 주장할 만한 여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처음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리서치팀이 특허 침해 가능성을 잘 살펴보고, 다른 기업에서 먼저 특허를 등록하지 않게 특허 출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